신앙 콘텐츠만 챙겨봤는데… 어? 극우 채널이 뜨네

입력 2025-12-10 03:00
어느 날 스마트폰 화면에 등장한 낯선 정치 유튜버. 말씀과 찬양, 간증 영상만 보던 기독교인에게 정치 콘텐츠가 추천되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신앙인을 어디로 데려가는가. 국민일보는 그 경로를 4회에 걸쳐 살펴본다.

제미나이

50세 여성 크리스천 김믿음씨는 유튜브에서 신앙 콘텐츠만 본다. 유명 교회 주일 설교와 인기 찬양팀의 CCM을 즐겨 듣고, 신앙 간증 영상도 꼭 챙겨 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김씨의 유튜브 화면에 낯선 영상들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섬네일 제목은 ‘어느 대형교회 장로의 기도문 발칵, 한국 기독교 난리났다.’ 영상을 업로드한 채널은 성창경TV로, 한 설문 조사에서 ‘매우 보수’(극우) 성향 기독교인이 자주 시청한다는 정치 유튜버였다. 그는 영상에서 “좌파들이 교회를 점령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순수 신앙 영상만 시청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김씨를 정치 광장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김믿음씨는 기독교인의 시청 패턴을 실험하기 위해 취재진이 고안한 인물이다. 취재진은 1975년 1월 1일생의 가공 인물 계정을 신규 개설하고, 정치색이 없는 순수 신앙 영상을 시청한 뒤 유튜브 알고리즘의 추천 경로를 따라가 봤다.

실험 방식은 미국 프린스턴대 심사를 거쳐 2023년 12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유튜브 추천 시스템 검증: 이념적 친화성·극단성 및 문제적 콘텐츠 추천 평가)을 참조해 설계했다. 실험은 10월과 11월 각각 새 계정으로 총 두 차례 진행해 결과를 교차 검증했다. 이번 기획엔 데이터 저널리즘 전문가인 권오성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가 협업했다. 서울여대에서 ‘미디어와 종교’를 연구하는 박진규 교수와 중앙대에서 빅데이터 저널리즘을 연구하는 이신행 교수는 자문을 맡았다.


유튜브 알고리즘 실험 결과

이번 실험에서 취재진은 아무것도 시청하지 않은 새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순수 신앙 영상 100편을 각 30초 이상 시청했다. 시청을 마친 뒤엔 메인 화면에 등장한 상위 영상을 수집, 이어 첫 번째 영상부터 유튜브 추천 영상을 계속 재생시키면서 영상과 그 밑에 새로 뜬 추천 영상 목록을 확인했다. 시청을 마친 뒤엔 메인 화면을 다시 새로고침해 추천 영상을 기록했다.

신앙 영상 100편을 본 김믿음 채널에 알고리즘은 어떤 유튜버들을 소개했을까. 첫 메인 화면을 살펴보니 성창경TV, 배승희변호사, 책읽는사자, FTNER 등 보수 유튜버들이 추천됐다. 최상단 영상부터 재생된 영상 밑에도 보수 색채를 드러낸 유튜버들이 다수 발견됐다. 보수 유튜버들이 ‘좌파’ ‘극좌’라 부르는 유튜버들은 이번 실험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은 ‘윤 어게인’과 ‘부정 선거’를 강조하고, “한국에 공산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하는 기독교인은 주사파”라는 발언도 나왔다. 지난 1월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옹호하는 유튜버도 있었다.

특정 집단 밀어준 알고리즘

알고리즘이 추천한 유튜버들은 특정 집단이 애청하는 이들이었다.


목회데이터연구소(목데연)의 ‘개신교인의 정치문화 형성과 지형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성창경TV(33.3%) 배승희변호사(31.3%) 책읽는사자(8.3%) 채널은 ‘매우 보수’(극우) 성향 성도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답한 정치 유튜버(1~3위 합산)였다. 목데연은 서울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국민 저항권’이라 답한 응답자들을 ‘매우 보수’(극우)로 분류했다.

반면 목데연 보고서에서 전체 응답자가 가장 많이 본다고 답한 정치 유튜버는 김믿음 계정에 추천되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가 가장 많이 보는 유튜브 정치 채널은 뉴스공장(목회자 40.0%, 성도 36.2%) 매불쇼(목회자 36.8, 성도 23.7%) 뉴스타파(목회자 26.0%, 성도 32.2%) 등 순이었다. 이 채널들은 두 차례 실험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알고리즘이 ‘다수의 성도’가 아닌 ‘특정 성향의 성도’가 즐겨 보는 콘텐츠를 밀어준 것이다.

오염된 확신의 감옥

국민일보 실험 결과와 관련해 유튜브 관계자는 9일 “유튜브 추천 시스템은 조회수와 시청 시간, 좋아요와 싫어요 등 매일 800억개가 넘는 신호를 학습하며 진화하고 있다”며 “정치적 관점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하도록 추천 시스템이 설계돼 있진 않다”고 답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추천 경로에 유튜브 사업 구조가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유튜브는 광고 수익에 기대는 플랫폼인데, 자극적인 콘텐츠일수록 시청자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있고, 그만큼 광고 수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시청자를 플랫폼에 오래 붙잡아두기 위해 조회수가 급상승하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구조”라며 “이런 콘텐츠 중엔 눈길을 끄는 극단적 영상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치 콘텐츠 중에서도 보수적인 영상이 추천된 원인으론 유튜브 알고리즘의 ‘협업 필터링’이 지목됐다. 나와 비슷한 시청 패턴을 가진 이들이 많이 본 영상을 추천하도록 유튜브 알고리즘이 설계됐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신앙 영상만 봐도 보수 정치 콘텐츠가 추천되는 건 개별 이용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집단의 시청 패턴이 개인에게 적용된 결과”라며 “신앙과 정치 콘텐츠는 선과 악, 위기와 구원이라는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 특히 기독교와 보수 정치는 전통과 질서, 안보를 중시하고 개인의 헌신과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윤리 등 많은 면에서 상당한 교집합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알고리즘이 신앙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이 교수는 “알고리즘이 ‘필터 버블’을 만들면 다른 관점을 접할 통로가 줄어들고, 내부 논리만 순환하는 ‘반향실’이 형성된다”며 “이 안에서 정치적 반대자는 ‘생각이 다른 시민’이 아니라 ‘진리를 대적하는 세력’으로 악마화되기 쉽다”고 했다. 그는 “추천 알고리즘 통제권을 유튜브 플랫폼만 쥐고 있는 현재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현성 손동준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