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요환 목사의 새벽묵상] 풍요의 시대를 사는 가난한 마음

입력 2025-12-10 03:04

19세기 영국 작가 DH 로렌스의 단편소설 ‘흔들 목마를 탄 우승자(The Rocking-Horse Winner)’에는 한 가정의 보이지 않는 불안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 반복된다. “돈이 더 있어야만 해(There must be more money).” 겉으로 보기에는 넉넉해 보이는 집이었지만, 그 집안의 공기에는 늘 결핍의 속삭임이 떠다녔다. 절대 가난의 문제가 아니라 ‘풍요 속의 결핍’이 만들어낸 심리적 불안이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조금만 더 있으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텐데”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 ‘조금 더’는 절대 끝나지 않는다. 필요해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해서 사고,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소비하는 시대.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불안으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를 해체한다는 데 있다. 너도나도 ‘돈이 더 필요하다’는 믿음에 사로잡히는 순간, 이웃은 경쟁자가 되고 관계는 거래로 바뀌며 공감과 신뢰는 점점 자리를 잃는다. 효율을 중시하는 시장은 있어도 공동체를 지켜줄 윤리는 부족하다. 풍요의 시대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공허함과 고립감을 느끼는 이유다.

고대의 한 인물, 요셉은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대비하는 중대한 책임을 맡았다. 모든 것이 잘될 때가 오히려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풍요는 축복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시험이기도 하다. 풍년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요셉은 풍요의 시대를 가난한 마음으로 살았다. 풍요는 자신만을 위해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라고 맡겨 주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요셉의 탁월한 점은 그가 풍요를 ‘저축’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거나 축적하지 않았다. 수도에 거대한 중앙 창고를 짓지 않고, 이미 각 지역에 있던 창고를 활용해 곡식을 저장했다.(창 41:48)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 그리고 지역 공동체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요셉에게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사용이었다. 지금의 경영학에서 말하는 ‘접속(access)의 시대’를 수천 년 전에 앞서 실천한 셈이다. 현대 사회가 넷플릭스, 공유 차량, 공유 숙박 등 소유보다 사용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이동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풍요를 누리되 그것에 취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것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마음. 이것이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궁상맞게 산다는 뜻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향해 사는 마음, 물질을 절대화하지 않고 더 좋은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 그리고 이웃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25년 전 ‘소유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던 제레미 리프킨의 지적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풍요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 풍요는 오히려 우리를 더 묶어버릴 수도 있다. “진짜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믿음은 우리가 물질을 절대화하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풍요의 시대일수록 더욱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역설이 여기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가 다시 ‘함께 살기 위한 상상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 사람이 욕망을 절제하고 이웃을 위해 손을 내밀며 자신에게 맡겨진 풍요를 흘려보내기 시작할 때, 그곳에서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요셉이 그 시대를 살렸듯이 오늘 우리의 작은 선택들이 이 시대를 다시 살릴 수 있다.

허요환 안산제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