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주사 이모

입력 2025-12-10 00:40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 송강호의 주요 정보원은 ‘주사 아줌마’(전미선)였다. ‘동네 사람들 아프면 병원 안 가고 찾는다’는 그는 불법으로 치료하며 주워들은 얘기를 송강호에게 전해준다. 그러다 연쇄살인 용의자로 찍힌 억울한 이도 있었다. 실제 영화 배경인 1980년대엔 동네에서 왕진 가방 들고 주사 놔주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간호조무사·간호사 등 의료 분야 종사 경력의 이들은 기력 회복, 감기 치료는 물론이고 쌍꺼풀 수술까지 싼값에 해줬다.

주사 아줌마는 2000년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처방전 없이 주사제를 살 수 없게 되자 숫자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주로 화류계 여성 등을 대상으로 음성적 활동을 이어갔다. 노출을 꺼리고 야간 시간에 활동하는 이들의 특성과 업소나 집으로 직접 방문하는 주사 아줌마의 이해관계가 맞았다.

아줌마 호칭에 대한 거부감 탓인지 이쯤부터 명칭이 ‘주사 이모’로 바뀐다. 2010년대 들어 주사 이모는 피부에 좋다는 ‘백옥주사’, ‘신데렐라주사’ 등도 투약하며 저렴한 비용과 방문 서비스로 소리소문 없이 인기를 끌어 왔다. 이들이 수면 위에 떠오른 건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때였다. 당시 이 모 청와대 행정관이 청와대에 무면허 의료인을 무단으로 출입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청와대 비서관에 건넸다는 “주사 아줌마 들어가십니다” 문자가 한때 화제였다.

유명 방송인 박나래가 주사 이모에게 의료 서비스를 받은 의혹이 제기됐다. 오피스텔, 차량 등에서 항우울제, 수액 등을 맞았다는 전 매니저의 폭로에 박씨가 “면허가 있는 의사에게서 영양제를 맞은 것”이라며 반박한 게 화를 더 키웠다. 허가되지 않은 곳에서 주사한 것 자체가 불법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일부 의사가 박씨의 주사 이모를 고발했고 보건복지부도 행정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결국 박나래는 방송에서 하차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불법 급행 치료에 맛들인 일부 유명인들이 뜨끔해질 것 같다. 사회 눈높이가 40년 전과 달라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