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경 “‘재능 없다’는 영화 속 주인공, 내 모습 같았죠”

입력 2025-12-09 01:06
배우 심은경은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에서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를 연기했다. 지난 5일 인터뷰에서 심은경은 “극 중 자기 재능을 의심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마치 제 이야기 같았다”고 말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 ‘여행과 나날(포스터)’은 여름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두 사람이 여러 사건을 겪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순간, 한겨울의 대학교 강의실로 장면이 전환된다. 지금까지 펼쳐진 이야기는 각본가 ‘이’가 쓴 시나리오로 제작된 영화였음이 드러나고, 영화 후반부에는 슬럼프에 빠진 ‘이’가 눈 덮인 시골 마을로 떠나는 여정이 펼쳐진다.

오는 1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극 중 ‘이’를 연기한 심은경(31)을 지난 5일 서울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심은경은 “대본을 읽자마자 ‘이’에게 깊이 공감했다”며 “자신의 영화 상영 후 관객의 질문에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답하는 장면이 확 꽂혔다. 늘 마음속에 느끼던 저 자신에 대한 부분이라 더 와 닿았다”고 말했다.

엣나인필름 제공

일본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미야케 쇼 감독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심은경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 두 사람은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의 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관객과의 대화(GV)를 함께하며 인연을 맺었다. 미야케 감독은 쓰게 요시하루의 만화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을 엮어 이 작품을 만들면서 원작 속 일본인 중년 남성 주인공을 한국인 여성 각본가 ‘이’로 재해석한 뒤 출연을 직접 제안했다.

심은경은 “당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눈 적도 없는데, 대본을 읽고 ‘어떻게 이렇게 나를 잘 파악했지? 이건 내 이야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03년 ‘대장금’에서 아역으로 데뷔한 심은경은 성인이 되던 해인 2014년 ‘수상한 그녀’로 국내 시상식을 휩쓸며 주연급 배우로 자리 잡았다. 2019년 일본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왔다. 이번 작품에서 심은경은 일본어 대사와 한국어 독백을 병행했다. 심은경은 “감독님이 한국어로 말하는 제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저 자신을 발견한 듯했다면서 한국어로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설정했다”고 말했다.

심은경은 작품 속 주인공처럼 ‘수상한 그녀’의 성공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릴 땐 연기는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는데, 어느 순간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느껴지자 ‘그만해야 하나’ 생각하게 된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이’가 사소한 사건을 겪으며 슬럼프에서 벗어나듯, 심은경도 “카페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문득 ‘나는 연기가 정말 좋은데, 진심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때 다시금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연기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심은경은 “예전엔 매 장면 힘을 주며 감정에만 의존했다”며 “그러다가 드라마 ‘내가 죽기 일주일 전’에서 김혜영 감독님께 ‘뭘 하려고 하지 마’라는 디렉션을 받았는데, 그 덕분에 이전엔 없던 톤의 연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 ‘여행과 나날’에서는 그 방식을 스스로 체화해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홍보와 드라마 촬영을 병행 중인 그는 “늘 연말이면 쓸쓸했는데, 이번엔 바쁜 하루를 보내며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내년 상반기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으로 안방극장에 돌아올 예정이다.

김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