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중기 보편 지원 멈춰야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 탄생”

입력 2025-12-09 00:25

한국의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지원 기준을 매출에서 사업경력으로 바꾸고 구조조정을 효율화하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대 0.7%가량 늘 수 있다고 한국은행이 추산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편 지원을 멈추고 제2의 테슬라나 바이트댄스(동영상 콘텐츠 플랫폼 ‘틱톡’ 운영사)로 성장할 만한 기업을 초기에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이 8일 내놓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예산 규모를 그대로 둔 채 지원 기준을 ‘매출액’에서 ‘업력 7년 이하 기업’으로 바꾸기만 해도 지원금이 자본 생산성이 높은 신생 기업에 흘러 들어가 GDP가 0.45%, 임직원 임금은 1.08%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는 일부 중소기업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상한선 부근에서 규모를 더 키우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피터팬 증후군’ 완화 효과가 0.06% 포인트 포함돼 있다.

또 벌어들이는 돈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 중소기업 등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자산 매각 등을 효율화하는 경우 GDP가 0.2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을 그대로 둔 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식과 구조조정하는 과정을 바꾸기만 해도 GDP를 0.68%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9%로 절대적이다. 근로자 비중 또한 80.4%로 상당히 높다. 이 때문에 정부는 중소기업에 작지 않은 규모의 예산을 배정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정책 자금은 6조원에 육박하고 신용 보증 잔액은 60조원을 넘는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인 1997년 대비 각각 5.4배, 7.8배 많다.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보증부 대출 비중은 6%가량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의 4배 이상이다. 그러나 노동 생산성은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인 32%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55%에도 한참 못 미친다.

생산성과 연관도가 낮은 매출액 기준 지원을 멈추고 기업의 성장 회피를 유발하는 중소기업 자격 요건을 바꾸자는 것이 한은의 제안이다. 자산 매각과 구매자 매칭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하는 중소기업 구조조정 전용 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비용을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낮추자고도 제안했다. 회생 가능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최대한 일찍 판별해 적기에, 효율적으로 정리하자는 것이다. ‘부실 조기 식별→자율 구조조정→질서 있는 퇴출’ 구조다.

보고서를 쓴 최기산 한은 거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대기업과 생산성 격차가 크고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적다”면서 “현행 지원 제도는 혁신 중소기업의 발굴과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더 잘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