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안 사요”… 역대 최대 외국인 관광객 ‘체험형 소비’

입력 2025-12-09 02:02
지난달 24일 서울의 한 올리브영에서 외국인들이 화장품을 고르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중국판 틱톡 더우인에서는 서울 여행 후기를 공유하며 이른바 ‘서울병(首 病)’을 호소하는 영상이 잇따르고 있다. 말 그대로 ‘서울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현상’이다. K팝 공연과 로컬 감성 카페, 한강 피크닉, 편리한 대중교통 등은 한국을 찾는 이유가 되는 대표적 체험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렇게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여행 트렌드가 바뀌면서 관광객들의 씀씀이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10월 방한 외국인은 1582만1000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동기간(1458만9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같은 기간 누적 여행수입(162억2000만 달러)은 2019년(172억8000만 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방문객은 늘었지만 1인당 지출은 줄어든 셈이다.


과거 면세점 중심의 ‘명품 쇼핑 관광’에서 K뷰티·패션·라이프스타일 등 비교적 단가가 낮은 경험형 소비로 중심축이 이동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날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만난 소피아(27·미국)씨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는 “6년 전 교환학생 시절 왔던 한국 시내 거리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며 “올리브영에서 최신 화장품을 비교해 보고, 선물용으로 편의점이나 아트박스에서 간식과 굿즈를 사는 것이 여행의 큰 재미”라고 말했다.

소비 방식 변화는 카드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하나카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외국인의 무신사 이용금액은 전년 대비 343% 증가했다. 올리브영(106%), 다이소(46%)가 그 뒤를 이었다. 면세점은 40% 증가에 그쳤다. 이용자 수 증가율 역시 무신사(348%), 올리브영(77%), 다이소(46%) 순이다.

경험형 소비의 핵심 무대는 단연 성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올리브영N 성수는 오픈 1년 만에 누적 방문객 250만명을 넘겼다. 같은 기간 성수를 찾은 외국인 193만명 중 140만명이 이 매장에 방문했다. 외국인 4명 중 3명이 들른 셈이다. 올리브영 비수도권 외국인 구매 증가율 역시 2022년 대비 86.8배로, 제주·부산·강원 등 관광 지역에서 신장세가 두드러졌다.

이 흐름에 맞춰 외국인 쇼핑 동선은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에서 편의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CU는 뷰티 전용 매장을 확대하며 화장품 매출이 전년 대비 올해(1~11월) 21.4% 증가했다. GS25는 무신사 협업 제품 매출이 지난해 대비 의류 133.4%, 양말 15.8%, 속옷 23.2% 늘었다.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도 브랜드 팝업존이나 이벤트존 등을 앞세운 특화 매장에서 외국인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약국도 새로운 관광 코스로 떠올랐다. 인바운드 플랫폼 크리에이트립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출시한 ‘K약국 카테고리’ 상품은 출시 2주 만에 예약 건수가 44% 증가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 중국인 단체 관광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K라이프스타일 체험을 위해 개별 방한하는 비율이 높아진 영향”이라고 해석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