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악화된 여론과 위헌 시비로 인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법왜곡죄 신설법 처리를 유예했다. 8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들 법안 처리를 논의했으나 총의를 모으지 못하면서 9일 본회의 상정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민주당은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하며 추가 공론화 절차를 밟기로 했다.
김현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비공개 의총을 마친 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에 대해 논의한 결과 전문가 의견을 더 취합하고 의원 논의를 숙성시킨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이들 법안은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거센 위헌 시비에 휘말렸다. 정청래 대표도 앞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더 넓히고, 위헌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은 보완하고 수정할 부분은 과감히 수정해 나가겠다”며 신중론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의총에서 의원들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위헌 요소를 안고 가는 데 대한 구체적인 반대 목소리를 쏟아냈다. 김 원내대변인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이견이 없었다”며 “하지만 일부에서 제기된 위헌성 논란과 관련해 ‘상대에게 빌미를 줄 필요가 있느냐’, ‘그런 논란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법안을 처리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서둘러야 하는데 정무적 판단을 고려하는 당이 답답하다는 취지로 성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외부 로펌에 법안의 위헌적 요소 등 전반적 법률 검토를 의뢰했다.
법왜곡죄에 관한 우려 의견도 다수였다. 김 원내대변인은 “현재 판례로도 다 돼 있는데 (법왜곡죄) 법을 만들어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었다”며 “법왜곡죄에 대해서도 숙의한 다음 의총을 열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법관 회의체인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정기회의를 열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비상계엄 전담재판부 설치 관련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위헌성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이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두 법안에 대한 입장 표명은 사전에 상정된 안건이 아니었지만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회의 현장에서 발의됐고, 재석 과반 찬성으로 가결됐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를 전제로 위헌법률심판·헌법소원을 제청해도 내란·외환죄의 경우 형사재판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처리 역시 이날 법사위 법안소위 논의 끝에 연기됐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당이 위헌성을 줄인다고 했지만 아무리 줄여도 위헌은 위헌”이라고 말했다. ‘현지 누나’ 인사 청탁으로 물의를 빚은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의총에서 의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거취를 지도부에 일임했다.
김혜원 성윤수 기자, 고양=양한주 기자 ki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