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녹인 ‘덕심’… AGF 뜨거운 오픈런

입력 2025-12-10 02:44 수정 2025-12-10 02:44
지난 5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AGF 2025’의 엔씨소프트 부스 앞에서 코스어가 캐릭터 코스튬을 선보이고 있다. 엔씨소프트 제공

일산 킨텍스 앞,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몰아쳤지만 현장의 열기는 멈춰 세울 수 없었다.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게임 축제 ‘AGF 2025’가 열린 킨텍스 전시장은 새벽부터 몰려든 수만 명의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 두꺼운 패딩 점퍼로 중무장한 관람객들은 입장을 위해 밤샘 대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행사장이 열리자마자 각자 응원하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부스를 향해 질주하는 ‘오픈런’ 진풍경을 연출했다.

AGF의 위상은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과거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서브컬처(일본 애니메이션풍) 게임이 최근 수년 사이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매출 상위권을 오르내리며 주류 문화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게임사들도 앞다퉈 서브컬처 장르 개발에 뛰어들면서 팬들과의 접점인 오프라인 행사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올해 AGF는 역대 최대인 1075개 부스 규모로 열렸다. 주최측은 “게임사 참가 비율이 작년 대비 50% 정도 늘었다”면서 “캐릭터를 활용한 IP 확장에 큰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5일부터 사흘간 행사가 열린 일산 킨텍스 제1전시장은 넷마블,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등 국내 유수의 게임사와 함께 요스타, 사이게임즈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해 부스를 꾸렸다. 전시뿐 아니라 성우 토크쇼, 코스프레, 콜라보 카페 등 즐길 거리가 곳곳에 배치돼 행사장이 북적였다.

AGF 특유의 현장 분위기는 일반적인 게임쇼와 다르다. 부산에서 열리는 ‘지스타’가 신작 공개와 비즈니스에 무게를 둔다면 AGF는 철저히 팬덤 중심의 축제다. 행사장에 마련된 DJ 부스 앞에서는 수백 명의 관람객이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맞춰 격렬하게 군무를 추고 응원봉을 흔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굿즈 구매력 또한 남다르다. 한정판 굿즈를 손에 넣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것은 예사다.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든 관람객들의 표정에는 피곤함보다 뿌듯함이 묻어난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AGF는 참여할 맛이 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뜨거운 팬덤은 게임사들에게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기도 하다. 행사에 참여한 한 게임사 고위 관계자는 “서브컬처 게이머들의 충성심은 다른 장르의 골수팬들과 비교해도 훨씬 깊고 진하다. 반대로 말하면 게임의 작은 오점 하나에도 크게 분노하고 반응하는 것이 바로 이 팬덤”이라고 말했다.

실제 행사장 인근에서는 트럭 시위나 게임 운영 개선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포착되기도 했다. 이들은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개발사 운영진에게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촉구하는 능동적인 소비자들이다.

이 관계자는 “팬들은 스토리의 개연성, 작화의 퀄리티, 과금 모델의 합리성 등 콘텐츠의 모든 요소를 현미경처럼 샅샅이 뜯어본다”며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완벽한 게임성을 갖추면서도 그들의 ‘덕심’을 자극할 매력적인 요소를 충분히 녹여내야만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