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HL그룹 내부 거래 칼 뽑은 공정위, 현장조사 착수

입력 2025-12-09 00:42

공정거래위원회가 8일 HL그룹을 비롯해 HL홀딩스·HL위코·HL D&I 등 계열사와 정몽원 회장 자녀 소유의 사모펀드 로터스프라이빗에쿼티(PE)에 대해 현장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HL그룹 내부 자금이 총수 자녀 소유 사모펀드로 흘러갔다는 ‘부당지원’ 의혹이 불거진 후 약 1년 만이다(국민일보 2024년 12월 4일자 16면 참조). 이와 관련해 사정기관의 조사가 이뤄진 건 처음이다.

로터스PE는 정 회장의 두 딸이 지분 100%를 가진 사모펀드다. HL홀딩스가 자회사들을 통해 로터스PE가 참여한 펀드에 약 2170억원을 출자한 구조가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로터스PE는 2020년 11월 30일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신생 운용사임에도 HL홀딩스의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2023년 말 기준 5개 펀드를 운용했는데, 이 중 58%를 HL홀딩스가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터스PE가 HL그룹의 ‘가족회사’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유는 HL홀딩스가 비상장 자회사인 HL위코와 HL D&I를 경유해 출자를 진행하며 공시 의무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HL위코는 2023년 적자를 냈음에도 HL홀딩스의 유상증자나 차입을 통해 로터스PE 펀드에 출자금을 냈다. 업계에서는 총수 자녀가 100% 소유한 로터스PE가 사실상 승계자금 조달 통로로 활용됐고, 이는 기존 대기업들의 편법 승계 패턴과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의혹 제기에 대해 HL그룹은 법령상 불가피한 출자 방식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추가 출자 계획이 없고 승계와도 무관하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공정위가 현장조사에 들어가면서 HL그룹의 우회출자 구조가 부당지원에 해당하는지, 나아가 총수 일가의 승계 지원을 위한 편법인지가 본격적으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HL그룹 지배구조 투명성 논란도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는 최근 내부거래·부당지원 규제 강화를 핵심 과제로 삼고, 대기업 집단의 사익 편취 구조 점검을 확대하며 제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