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 미래 신사업의 ‘양 날개’가 꺾였다. 자율주행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의 키를 잡고 있던 두 수장이 잇달아 물러나면서다. 두 사람의 퇴장을 두고 업계에선 초기 기술력 격차가 향후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두 분야에서 현대차그룹이 뒤처지고 있다는 자체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래 청사진 수정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8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송창현 현대차그룹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이 최근 사임을 밝혔다. 미래차 시장의 승부를 가를 핵심인 자율주행 전략을 가장 앞에서 이끌던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은 2022년부터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에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계는 번번이 뒤로 늦춰졌다. 올해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에 레벨2+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출시했지만 현대차그룹은 여전히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의 경쟁사에마저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 본부장의 퇴임은 그가 회사에 먼저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문책성에 가깝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내·외부에서 다양한 우려가 나왔어도 송 본부장을 신뢰했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더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지난 5일 ‘기아 80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저희가 좀 늦은 편이고 (경쟁사와) 격차는 조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단행할 인사에서 AVP본부의 조직도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송 본부장 후임으론 만프레드 하러 차량개발담당 부사장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엔 현대차그룹의 AAM 사업을 최전선에서 이끌던 신재원 고문이 AAM 본부장 겸 슈퍼널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 이례적으로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행한 ‘원 포인트’ 인사였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AAM 기체 개발에 관한 감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널은 지난 7월 전체 인원의 10%에 달하는 직원 53명을 감축했다. 슈퍼널의 기체 개발과 미국 인증 일정도 예상보다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의 AAM 사업에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현대차는 올해 3분기 발표한 중장기 전략 보고서에서 “2028년 이후 상용화를 목표로 기체 개발을 추진하고 한국 외에서도 초기 시장 진입을 검토한다”는 AAM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수소·자율주행·AAM·로보틱스 등 정 회장이 낙점한 4대 미래 사업 중 절반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전반적인 미래 청사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앞으로 1~2년이 시장 선점을 위한 골든타임이 될 텐데, 이 시기에 가속페달을 밟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게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