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투약 이력 ‘깜깜’… 중독환자 이송된 응급실 ‘막막’

입력 2025-12-09 02:06
게티이미지뱅크

동네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의원에서 약을 받은 환자 10명 중 8명은 다른 병원에서 ‘투약 이력’을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외과 등 일반 과목과 달리 유독 정신과에서만 환자가 먹은 약을 파악하기 위한 개인투약이력조회 서비스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환자가 복용한 약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개인투약이력조회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의사·약사가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에 처방·조제 내역을 입력하면 약물 중복, 부작용 여부 등을 점검할 수 있다. 기록된 투약 이력은 다른 병의원에서 환자 복약 이력을 확인하기 위해 활용된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외래환자의 원내 처방·조제 DUR 점검건수’를 보면 지난해 정신과 의원에서 수집한 원내 처방·직접조제 중 투약이력조회로 연계되는 비율은 전체 처방(824만1683건)의 16.6%에 불과했다. 처방 단계의 DUR 점검은 전체 처방의 16%(131만6000건)에 불과했고, 조제 단계 DUR 점검은 처방의 0.62%(5만1417건)로 떨어졌다. 정신과 환자 10명 중 8명의 투약 이력이 누락되는 셈이다.


가장 큰 혼란을 겪는 곳은 중독 환자가 이송되는 응급의료 현장이다.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서 투약 정보를 알아내기 어렵고, 치료 시 자칫 중복 처방할 우려도 있다. 익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8일 “응급 상황에서 유달리 정신과 약물만 복약 조회가 되지 않는다”며 “약물 종류와 ㎎, ㎖ 단위의 복용량에 따라서 처치 방법이 달라진다.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응급실로 이송된 급성 약물중독 환자는 매년 2500명 안팎이다.

의료계에선 처방과 조제 사이 발생하는 DUR 점검 격차가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한다. 본래 처방·조제는 병원·약국에 분업돼 있지만 자·타해 위험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예외적으로 병원 내 직접 조제도 허용된다. 하지만 정신과 의원에서 경증 환자에게 무분별하게 확대 적용하면서 DUR 점검을 누락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창현 신천연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은 “최근 우울증과 불안장애 등으로 늘어난 경증 정신질환자에게 관행적인 원내처방·직접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정신과 의원에서 조제 단계의 DUR 점검이 누락돼 환자와 의료진이 약물 복용 이력을 확인하지 못하는 공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