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넷플릭스 시대의 극장

입력 2025-12-09 00:40

불이 꺼지는 순간,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도피처가 열린다. 암흑 같은 어둠 속에서 대형 스크린이 켜지고, 비로소 온전하게 영화를 즐길 시간이다. 두 시간 넘게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작품에 빠져 있다가 극장을 나설 때, 누군가는 눈물자국을 지우고, 어떤 이는 웃음과 감동을 가슴에 품는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은 집에서 OTT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몰입감과 생생함이다.

그런데 해리포터나 슈퍼맨 등을 극장에서 만나길 손꼽아 기다리던 이 경험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상징적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가 넷플릭스에 팔렸기 때문이다. 1923년 설립된 워너브라더스는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슈퍼맨, 배트맨은 물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같은 고전 명작까지 품고 있는 거대 스튜디오다. 최근 세계 최대 OTT 넷플릭스가 워너의 영화·TV 스튜디오와 HBO 채널 등을 720억 달러(약 106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해리포터 같은 새 시리즈가 나와도 앞으로는 극장이 아닌 OTT에서만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영화계의 반발은 거세다. 넷플릭스는 워너 영화의 극장 개봉 전략을 유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아카데미 출품을 위한 최소한의 형식적 상영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계약을 두고 “(넷플릭스의) 할리우드 정복이 사실상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평했다.

극장용으로 제작되던 영화는 앞으로 OTT용 콘텐츠로 기울 것이고,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에 갈 이유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극장은 ‘특별한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전통적인 영화 생태계도 서서히 무너질 것이다.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지겠지만, 그 영화가 더 이상 극장이라는 집을 찾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잃어가는 것은 스크린이 아니라, 함께 숨을 고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던 한 시대의 장면일지도 모른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