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뒤뚱 걷는 개의 네 다리가 모래사장을 떠받치고 있다. 털북숭이 개의 다리 사이로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 그리고 멀리 수평선도 뒤집힌 채 보인다. 개의 목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찍은 장면으로, 개의 움직임과 시선으로 보는 지구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때로 뒤집히거나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은 개의 걸음과 호흡을 반영한다.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예술계에 대두된 사유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모두 지구의 주인이라는 포스트 휴머니즘 철학이다. ‘살아 있는 현대미술 거장’ 조안 조나스(89)가 2014년 자신의 반려견 오즈에게 카메라를 달아 찍은 이 퍼포먼스 영상 ‘아름다운 개’는 그가 다른 종과의 공존을 얼마나 선구적으로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경기도 용인의 공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가 제8회 백남준예술상 수상 작가 조안 조나스 개인전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를 하고 있다. 격년제로 시행하는 백남준예술상은 전 테이트모던 관장 프란시스 모리스가 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국내외 미술계 인사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한국이 낳은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이 1960년대 독일에서 플럭서스 운동에 참여하며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 아트를 했다면 조안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래서 이번 수상은 더욱 뜻깊다.
조안은 2015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뽑혔고, 2024년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질 정도로 동시대 세계 미술계의 거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가 한국 첫 미술관 개인전일 정도로 국내 대중에게는 덜 알려져 있다.
전시는 그래서 비디오, 드로잉, 설치 등 작품 40여점과 자료를 통해 50년에 걸친 조나스의 예술 인생을 제대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조나스는 학부에서 미술사를, 대학원에서 조각과 드로잉을 전공했다. 졸업 후 30대 시절이던 60년대 후반부터 비디오 아트와 퍼포먼스 아트를 하며 작가 인생을 시작했다. 특히 전위적인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 등과 교유하며 미술을 넘어 공연으로 미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비디오는 더 개방적이고 남성들이 덜 지배하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는 퍼포먼스와 비디오 아트의 실험적 선구자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닌다.
남성이 지배한 추상화 세계에서 비켜나 그가 택한 선구적 비디오 작업은 전시의 첫 번째 장 ‘실험-급진적인 순간들’에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바람’(1968)은 겨울의 눈밭에 선 사람들이 세찬 바람에 자신의 동작을 맡기는 즉흥성과 우연성이 돋보이며 자연·인간·기술이 상호작용하는 초기 실험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조나스는 1970년 조각가 리처드 세라와 일본으로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생애 처음 비디오 카메라를 샀다. 가부키 연극도 봤다. ‘오가닉 허니의 비주얼 텔레파시’(1972)는 그 여행의 결과물로 가면을 쓴 작가의 분신(오가닉 허니)을 등장시켜 당시 여성 이미지의 규범을 해체하고자 했다.
두 번째 장, ‘여행-자연의 정령·동물 조력자’에서는 80년대 이후 여행을 통해 발견한 세계의 문학과 신화, 그리고 동물 조력자 모티브를 통해 인간 중심 서사를 벗어나 새로운 생태적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과 동물의 시선을 중첩시키면서 종간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아름다운 개’는 이 섹션에 등장한다. 여행 중 마주한 풍경과 사물, 동물의 흔적을 모아 비디오, 드로잉, 오브제로 엮어낸 설치 작품 ‘시내, 강, 비행, 패턴 Ⅲ’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장 ‘공생-되살림과 변주’에서는 형식과 주제의 변주를 보여주며 최신작까지 선보인다. 구순에도 늙지 않는 작가의 실험 정신에 감동하게 된다. ‘소리 만지기’(2014)는 상자 형태의 목조 구조물을 통해 세 개 채널의 비디오를 들여다볼 수 있는 비디오 조각이라는 형식적 신선함, 퍼포먼스와 오브제를 결합해 소리를 ‘듣는 것’에서 ‘만지는 것’으로 확장한 발상의 독특함이 돋보인다.
최신작 ‘빈방’(2025)은 상실과 기억, 부재와 그리움의 정서를 탐구하는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한지로 만든 조명 조각은 세상을 떠난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고, 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를 그린 벽면의 드로잉은 생명이 저물고 소생하는 순환에 대한 감각을 증폭시킨다. 내년 3월 29일까지.
용인=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