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가 저물고 있다. 2025년과 함께 미국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페니(1센트, 한화 14~15원)도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페니는 미국의 동전 중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한다. 미국 재무부는 현재 약 3000억 개의 페니가 미국 시장에서 유통 중일 것으로 추정한다. 상업 활동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웃도는 유통량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늘 페니가 부족해 매년 새로 찍어낸다. 2024년 한 해에 발행한 페니의 양만 해도 32억개에 이른다. 미국 조폐국이 그해 생산한 주화 전체의 52%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조폐 수량만 보면 페니는 넘쳐나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왜 시중에선 계속 ‘페니 부족 현상’이 빚어지는 걸까.
그 이유는 페니가 “되돌아오지 않는 동전”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케이티 위버의 분석이다. 사람들이 거스름돈으로 페니를 받긴 하지만 정작 장을 볼 때 페니를 사용해 지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페니는 상인에게서 소비자에게로, 한 방향으로만 이동할 뿐 되돌아오진 않는 화폐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상인은 거스름돈으로 줄 페니가 늘 부족하고, 조폐국은 매년 새 페니를 찍어낸다. 집마다 차고 넘치는 페니가 순환하지 않아 미국 사회 속 페니가 늘 부족해지는 현상을 두고 위버는 “영원한 페니의 역설”이라고 불렀다.
단순히 순환이 멈춘 것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기준 페니 한 개를 만드는데 드는 제조비용은 3.7센트다. 1센트를 만들기 위해 3.7센트를 쓴 것이다. 조폐국은 한 해 동안 페니 때문에 8500만 달러가 넘는 적자를 냈다. 페니가 “돈 먹는 동전”이란 오명을 쓴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1월 12일을 끝으로 더는 페니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전 정부는 왜 페니 발행 중단을 진작 추진하지 않았을까.
사실 오바마 정부 때도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당시엔 페니 생산 중단에 대해 반드시 의회가 관련 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이해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대중이 페니에 대해 갖는 정서적 애착과 이해관계자의 로비 활동 역시 의원들의 결정을 주저하게 했다. 그러다 지난해 “재무부 장관이 국가의 필요에 따라 생산량을 결정할 수 있다”는, 기존 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담긴 위버의 글이 신문에 게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위버의 해석처럼 새로운 법을 만들 필요 없이 행정적 권한으로 생산량을 ‘0’으로 설정하는 방식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올해 말 232년간의 페니 시대가 마침표를 찍기에 이른 것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 페니의 긴 역사가 매듭지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다수의 작은 노력에 관해서다. 집집마다 남아도는 페니가 늘 시장에서 부족한 이유는 페니를 거스름돈으로 받은 사람이 그 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관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대로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페니를 사용했더라면 지금의 페니 결핍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페니만의 문제일까. 우리 주변엔 다수가 함께 작은 노력을 모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꽤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그 작은 노력에 기여하는 한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는 소수의 큰 결정에 관해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결국 기존법에 근거한 재무부 장관의 기능으로 페니 발행을 중단했다. 다수의 노력이 아닌, 소수 책임자가 지닌 역할을 재발견하고 이를 실행한 결과였다. 우리 가운데는 때때로 책임자의 실행을 통해서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혹 자신이 그 역할을 맡은 책임자라면 올해가 다 지나기 전 실행해야 할 책임을 미루지 않아야겠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우리 가정과 사회에 이처럼 작은 노력, 책임의 실행이 많이 쌓여가는 계절이 되길 소망한다.
박성현(미국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수석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