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정당한 예외라는 위험한 전례

입력 2025-12-09 00:33

전직 대통령 향한 국민적 분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정당화
특정인 겨냥한 처분적 입법은 사법권 독립 형해화 불러올 것
사법은 분노 해결 도구 아니라 소수 권리 지키는 마지막 방패

12·3 비상계엄은 헌정사상 초유의 충격이었다. 국민들은 그 실체가 1년이 지난 지금도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불안을 여전히 품고 있다. 집권여당이 파고든 것도 그런 불안이다. 내란 혐의에 연루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분노,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결합된 정치적 열기 속에서 지금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상적인 사법부였다면 이미 단죄가 끝났어야 한다”는 것이 입법을 밀어붙이는 더불어민주당의 인식으로 읽힌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법 독립은 유난히 척박한 땅 위에 세워졌다. 광복과 전쟁, 군사정권의 압박 아래서도 지켜낸 것이 삼권분립이다. 그 중심에 재판의 독립이 있었다. 당연한 전리품이 아닌데, 현재 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을 통해 한계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은 특정 사건을 위해 별도의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문제는 재판부 구성 과정에 외부 기관이 직접 개입하는 설계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특정 사건이나 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입법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해 왔다. 내란전담재판부는 이런 재판 구조를 다시 세우는 시도로, 법적 안정성과 평등 원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1987년 헌법하의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는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헌법은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입법을 금지해 왔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재판부 구성 자체가 권력투쟁의 도구가 된다. 재판부의 인사와 배당을 법원이 아닌 정치가 관여하면 사법권의 독립은 형식만 남는다. 사건을 무작위 배당하는 원칙 역시 권력의 이해가 어떤 경로로든 재판에 스며들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정당한 예외는 없다. 원칙이 깨지면 내란 사건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엔 다른 사건도 전담할 수 있다.

법안에는 내란범 구속기간을 6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연장하는 규정도 포함된다. 하지만 형사 절차의 보편적 원칙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윤석열을 풀어줄 수 없다”는 정치적 감정이 절차 원칙의 예외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위험한 전례가 된다.

민주당 일각과 조국혁신당 내에서도 “실익이 없다” “위헌·위법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우려와 요구가 나온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이뤄지면 재판은 정지될 수 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간의 재판이 무효가 된다. 내란 혐의 단죄가 지연되고 정당성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법왜곡죄는 또 다른 차원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판검사를 부당한 목적으로 법을 왜곡 적용했다는 이유로 10년 이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은 명확성 원칙을 훼손한다. 고의와 오판의 경계를 어디까지 어떻게 그을 것인가. 판결을 뒤집는 방식은 상급심 제도를 통해 마련돼 있다. 재판을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고 오면 판결은 정권의 눈치보기로 전락하게 된다.

독일의 법왜곡죄가 유사한 사례로 언급되지만 그 역사적 맥락은 정반대 교훈을 준다. 나치 부역 판사를 단죄하기 위해 도입된 법은 체제 변화 때마다 보복 도구로도 악용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역사는 반복되는 질문을 던진다. 만약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권이 내가 응원하지 않는 인물에게 같은 법을 적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의로 인정할 수 있는가.

사법 개혁의 명분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법 불신의 책임은 사법부 안에도 있다. 사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합하는 속도와 설득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법원은 스스로 신뢰를 회복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헌법 원리가 국민감정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 사법은 분노 해결 도구가 아니라 소수의 권리를 지키는 마지막 방패다. 사법권의 독립은 누구를 위한 특권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지키는 공공재다.

당 내부에서도 위헌 우려가 끊이지 않자 민주당은 이들 법안을 ‘일단 정지’하기로 했지만 취소 기류는 아니다. 특정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클수록 그 분노에 기대 제도를 바꾸려는 시도는 더욱 차갑고 냉철해야 한다.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절차이며, 그 절차에 대한 신뢰가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위험한 전례는 늘 정당하다고 여기는 예외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전이 아니라 절차적 정의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