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금산분리 완화와 기술발전

입력 2025-12-09 00:32

며칠 전 예산안이 통과됐다. 예산안에는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2018년 이후 평균 2% 이하의 경제성장률로 장기 저성장에 빠져 있었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경제 재도약을 목표로 각종 정책이 나오고 있다. 특히 150조원으로 구성된 국민성장펀드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모빌리티, 바이오, 이차전지, 미디어·콘텐츠, 항공우주·방산, 수소·연료전지, 원자력·핵융합, 로봇 등 첨단기술산업에 투자된다. 이러한 투자 중심의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금산분리 완화다.

몇년 전부터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2010년 중반부터 발전할 때 스타트업이라 해도 건물주는 지분의 1%만 받고 렌트비나 관리비를 받지 않았다. 10개 중 1개의 스타트업만 성공해도 건물주는 대박이 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금융회사는 일반 제조업 기업의 지분을 사 기술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카드 브랜드 회사가 스마트글라스를 준비하기 위해 안경회사의 지분을 샀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회사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만 했고, 투자는 하지 않았다. 이제는 가계대출이나 기업대출이 더 이상 나갈 곳도 없다. 추가로 대출을 하면 리스크는 상당히 커지기 때문이고, 실물 성장을 위해 금융회사가 신기술을 가지는 회사에 투자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 예산은 기술이 있다고 인정되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고용으로 연결하면 된다. 그러나 민간의 경우 12개 산업에 투자하는 비용이 150조원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AI 하나에만 10조원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AX 등도 포함하면 몇 배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또한 12개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특정한 대기업에 정부가 몰아줄 필요도 없다. 대기업들은 내부유보금, 금융회사 차입, 채권·주식 발행 등 여러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투자 여력에 한계가 오는 경우 투자를 멈추기 때문에 투자 규모 등을 먼저 살펴보고 나머지 조달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정부가 지원하는 12개 산업에 한해 금산분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CVC는 지주사 완전 100% 자회사로만 설립되고, 부채비율은 200% 이내, 그룹 계열사 투자 제한, 펀드 외부자금 비중 40% 제한, 해외투자는 총자산 20% 내로 제한돼 있다. 펀드의 외부자금 비중이나 해외투자 비율 변화를 통해 투자할 수 있다.

둘째,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보유하려면 100% 지분을 가져야 하는데, 국민성장펀드를 상정한 50대 50 비율의 직접투자 방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첨단전략산업특별법을 개정해 국민성장펀드 프로젝트 인가를 받은 사업에 대한 공동 출자가 허용돼야 한다.

셋째, 현행법상 금융사의 비금융사 출자 지분은 15~20%로 제한돼 있고 5%, 10%, 15% 이상 보유할 때마다 금융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따라서 지분 소유는 관계사를 합한 비금융사 출자 지분의 50%가 넘지 않도록 하고 5% 이상 보유 시 승인하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넷째, 현행법상 공동운용(Co-GP)은 금산분리로 인해 통상적으로 금융·금융사만 가능하다. 첨단전략산업특별법 및 벤처투자촉진법 개정을 통해 산업·금융 간 Co-GP를 허용하면 산업과 금융의 Co-GP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경제가 성장하려면 정부와 민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이러한 투자는 기술 발전과 고용을 통해 저성장의 터널에서 나올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