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성북구에 있는 한 식당, 한쪽 벽면에 두툼한 패딩점퍼가 빼곡히 걸렸다. 그 옆에 놓인 푸른 상자 안엔 정성스레 포장된 양말이 가지런히 놓였다. 다른 쪽 벽면엔 ‘성북구 공무관 초청 위로회, 여러분들의 섬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초록빛 현수막이 걸렸다.
이 지역 하늘이음교회(이상일 목사)가 올해로 15년째 구청 청소행정과 환경공무관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섬김의 날이다. 환경공무관은 통상 환경미화원으로 부르던 이들을 좀 더 존중하는 의미에서 사용키로 한 공식 명칭이다. 성북구청 환경공무관 130여명이 자리를 채우자 산타 모자를 눌러쓴 교회 성도들은 분주히 테이블 위 물잔을 채우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상일 목사의 인사와 함께 식사 기도가 울리자 박수가 터졌고, 이내 따뜻한 점심과 웃음소리가 식당을 가득 메웠다.
교회가 매년 이어온 환경공무관 초청 위로회는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닌 오랜 시간 지역과 함께 쌓아온 섬김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리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새벽 시간, 지역 곳곳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쓰레기와 계절에 따라 길거리에 쌓이는 낙엽과 눈과 싸우며 가장 힘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 목사는 이 질문에서 사역이 시작했다며 “환경미화원은 구청 직원이지만 가장 힘든 일을 한다. 이들이 쏟는 수고를 보면서 우리가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사역이 특별해진 건 구청과 협력하면서다. 구청장과 직원들이 매년 행사에 참석하며 날짜와 장소를 함께 조율하고 식사 후 레크리에이션과 경품 추첨까지 이어지면서 ‘지역 공동체 축제’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구청장과 관계자들도 현장을 찾아 공무관들을 격려한다.
행사 당일 상차림부터 고기 굽기와 안내, 선물 포장까지 모든 일은 성도 20여명이 도맡고 있다. 교회 총여선교회장인 김종원(54) 권사는 “섬길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며 “필요한 곳을 돕는다는 생각에 기쁨으로 헌신한다”고 말했다.
초청받은 환경공무관들에게도 이 행사는 그저 ‘식사 한 끼’가 아니다. 20여년째 청소 현장을 지켜 온 최도영(51)씨는 “환경공무관의 헌신을 지역사회가 인정하고 격려하는 뜻깊은 시간이라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우리도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면서 “추첨 경품 선물보다도 ‘누군가 우리의 수고를 기억해준다’는 사실이 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호경(49)씨도 “10년째 매년 참석하는 이유는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위로 때문”이라며 “내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이 자리를 따뜻한 보금자리처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한 고참 공무관의 말도 전했다. “길거리에서 쓰레기와 날씨랑 싸우다 보면 지쳐서 서러울 때가 있는데 오늘 같은 날 대접받으니 눈물이 난다더군요. 우리도 같이 울컥했어요.”
이 목사는 위로회가 15년째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자는 단순한 마음이다. 이 목사는 “주님은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고 하셨다”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신과 같이 섬기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교회의 비전이다. 하늘이음교회는 ‘하늘과 이어져 세상을 축복하는 교회’를 목표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섬김을 실천해 왔다. 환경공무관 섬김은 그 비전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대표 사역이라는 게 이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15년 동안 진심으로 다가가 보니 지역사회에서도 교회가 가진 사랑과 섬김의 마음을 알아주기 시작했다”며 “진심은 통한다는 걸 우리 교회는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지역섬김 사역을 고민하는 교회들을 향해 “일단 교회 주변을 돌아보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며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어윈 라파엘 맥매너스의 ‘코뿔소 교회가 온다’를 언급,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교회는 안전지대 안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아가 섬기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하면 됩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