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세포의 오해다

입력 2025-12-09 00:29

사람이 늙는다는 건 세포가 서로를 오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언제 멈춰야 하고 언제 자라야 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몸의 시간은 흔들린다.

젊음의 본질에 있어 에너지가 전부는 아니다. 세포 간 정확한 소통과 끊김 없는 대화, 질서 있는 반응이 있어야 한다. 젊은 세포들은 서로의 언어를 명확히 알아듣는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정교한 대화망에 잡음이 생긴다. 신호는 왜곡되고, 오해가 쌓인다. 세포가 제멋대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늙음이 온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 의대 교수는 노화를 ‘정보의 손실(information loss)’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2023년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화란 DNA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언제 켜지고 꺼져야 하는지 세포가 잊어버린 상태를 뜻한다. 세포가 살아 있긴 하지만 스스로 리듬을 읽지 못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늙음은 세포의 기억 상실이다.

이 연구에서 노화된 시신경세포에 젊은 유전자 조절인자(Yamanaka factors)를 다시 활성화하자 망막이 빛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시력을 잃은 세포가 다시 세상을 본 것이다. 세포가 기억을 되찾자, 젊음도 돌아왔다. 또한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실린 후속 연구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세포 간 신호 단백질이 엉켜 염증이 사라지지 않는 현상이 보고됐다. 본래 염증은 상처를 고치는 불씨다. 하지만 소통이 끊긴 몸에서는 이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른다. 노화를 일종의 ‘조용한 염증’(inflamm-aging)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이럴 때는 줄기세포도 오해한다. “재생하라”는 명령이 와도 “이건 위험 신호야”라고 착각한다. 이런 오해가 쌓이면 세포는 움츠러들고 조직은 재생을 멈춘다. 몸은 차차 세포 간 대화를 잃고, 점점 늙어간다. 그러나 최근의 의학은 세포를 억지로 조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대화를 회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 중심에 ‘엔에이디플러스(NAD+) 회복’과 ‘줄기세포 엑소좀 요법’이 있다. 두 방법 모두 세포에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NAD+는 세포 속 배터리이자 언어라고 볼 수 있다.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DNA를 복구하며 노화를 억제하는 단백질(시르투인)을 깨워 세포가 다시 자신답게 움직이도록 돕는다. 허나 나이가 들면 NAD+ 가 급격히 줄어든다. 배터리가 닳은 세포는 신호를 주고받을 힘을 잃어가고, 결국 소통도 끊긴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NAD+ 의 전구체를 투여한 노화 생쥐가 젊은 생쥐처럼 근육과 대사 기능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불 꺼진 세포 공장에 전기가 다시 들어온 셈이다.

회복은 세포 속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세포는 서로의 언어로도 회복한다. 줄기세포 엑소좀은 그 언어를 전달하는 작은 우편물과 같다. 이 속에는 단백질과 RNA, 유전자 신호가 들어 있어 다른 세포에 “지금이 회복의 때”라고 알려준다. 2022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연구에서는 줄기세포 엑소좀이 노화된 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되살리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확인됐다. 세포들이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자 몸이 조용히 젊음을 되찾은 것이다.

NAD+ 는 세포의 내부 언어를 되살리고, 엑소좀은 세포 사이의 언어를 복원한다. 하나는 안쪽의 기억을 깨우고, 다른 하나는 관계의 연결을 회복시킨다. 두 언어가 함께 울릴 때 몸은 생명을 기억하며 다시 젊어진다.

사람도 그렇다. 서로의 말을 오해하기 시작하면 관계가 늙는다. 하지만 다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관계는 젊어진다. 젊음이란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라 대화를 회복하는 일이다. 몸도 마음도, 신호가 통할 때 다시 살아난다. 하나님은 세상에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생명이 됐다. 젊음이란 그분의 음성을 다시 듣는 일이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