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입장 선회로 ‘환자기본법’ 도입 시동

입력 2025-12-08 00:05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릴레이 시위 92일차를 맞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영하 5도 날씨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파 사이로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가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손에 든 팻말에는 ‘환자의 투병과 권익 증진을 위한 환자기본법을 신속히 제정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은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릴레이 시위를 벌인 지 92일째 되는 날이었다.

1년7개월 이어진 의·정 갈등에서 가장 큰 피해를 겪은 당사자는 환자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의료대란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환자의 권리 등을 명시한 환자기본법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를 재개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자기본법을 발의한 지 약 1년 만이다.

특히 그동안 환자안전법과 일부 중복된다는 이유로 법 제정을 반대했던 보건복지부가 최근 찬성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논의에 탄력이 붙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7일 “환자기본법에는 의료 현장의 객체로만 여겨지던 환자를 주체적인 당사자로서 인정하는 환자 권리에 대한 선언이 담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국회는 환자안전법을 통폐합한 형태의 환자기본법을 검토하고 있다. 의사의 집단행동, 감염병 대유행 등과 같은 의료대란 속에서도 환자가 누려야 할 투병·치료·안전상의 권리가 폭넓게 담길 예정이다.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환자권리위원회 설립,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 실시 등도 명문화된다. 현재 보건의료기본법, 환자안전법, 의료법 시행규칙 등에 흩어져 있는 환자 권리를 체계화하고 보건의료정책에 반영하려는 취지다.

환자단체는 누구나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 환자기본법상 법정 단체로 등록되면 예산 범위 내에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안정적인 환자 지원 활동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등록 요건으로는 비영리·다수 권익 신장 목적, 상시 구성원 100명 이상, 1년 이상 공익활동실적 등이 거론된다. 현재 900여곳으로 알려진 환자단체 중 옥석을 가려내는 일이 과제로 지적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기본법과 함께 의료대란피해보상특별법, 필수의료공백방지법 등 이른바 ‘환자보호 3법’의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의·정 갈등이 야기한 환자 피해 실태를 조사·보상하고, 응급실·중환자실·분만실 등 필수의료 공백 사태의 재발 방지가 목적이다.

정부는 의료대란피해보상특별법 도입에는 부정적이다. 대신 의사 집단행동과 같은 의·정 갈등이 다시 일어난다면 향후 피해 실태를 조사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환자기본법에 담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