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국내 주요 기업 10곳 중 6곳이 아직 내년 투자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통상 리스크와 고환율, 노란봉투법 시행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이 투자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멈춘다는 것은 일자리와 성장의 엔진이 식고 있다는 신호다. 정부는 기업이 실제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6년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59.1%가 “투자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아예 없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조직개편·인사이동, 대내외 리스크 파악 우선, 불투명한 경제전망 등을 이유로 꼽았다. 결국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미·중 갈등 심화에 따른 공급망 재편 압박, 불안한 환율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니 당장 내년도 전략조차 확정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최근 삼성·SK·현대차 등 초대형 기업 총수들이 대통령을 만나 “미래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적 약속이 경제 전반의 투자 확대로 곧장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초대형 그룹은 대규모 현금 여력과 글로벌 생산망을 기반으로 중장기 투자를 이어갈 수 있지만, 500대 기업 상당수는 여건이 훨씬 열악한 중견기업들이다. 한국 경제의 허리를 이루는 이들 기업은 환율·금리·노동규제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불확실성이 조금만 커져도 투자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
특히 응답 기업의 63.6%가 “AI 관련 투자 계획이 없다”고 답한 점은 더욱 심각하다. 글로벌 기업들이 AI 인프라와 첨단 제조 시설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주저앉는다면 그 파장은 수년 뒤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투자를 확대하라”는 주문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법인세 부담, 각종 규제와 인허가 장벽, 노동시장 경직성 등 기업들이 꾸준히 호소해온 장애물을 해소해야 한다. 환율 안정과 예측 가능한 정책 집행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들이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정책적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