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소년범과 폴리테이너

입력 2025-12-08 00:40

배우 조진웅의 ‘소년범’ 행적이 처음 보도됐을 때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 대목 중 하나는 ‘유명 배우의 중대한 범죄 사실이 어떻게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건 당시 그가 19세 미만의 소년범이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소년법은 진행 중 사건의 언론 보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고, 이후에도 재판·수사 또는 군사상 필요한 경우 외엔 사건 내용에 대해 어떠한 조회에도 응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 후 사건이 보도됐지만 가해자 성명은 적시되지 않았고, 배우로 활동할 땐 예명을 사용해 해당 사건과 조진웅을 연결짓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사건 관계자들이나 동창생들 수만 해도 수백명에 달했기 때문에 언제든 알려질 여지는 있었다. 실제 몇 년 전 관련 내용이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라왔지만 널리 전파되진 않았다. 자칫 피해자들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점, 어쨌든 그가 재판을 거쳐 죗값을 받았다는 점 등이 더 적극적인 고발을 자제하게 한 이유가 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범 행적이 결국 드러나게 된 것은 그가 여러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했던 ‘폴리테이너(politician+entertainer)’였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대표작 ‘시그널’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그는 의로운 경찰관이나 독립투사 역할로 인상을 남겼다.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특사 도 맡았고, ‘독립군:끝나지 않은 전쟁’ 다큐멘터리에 내레이터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활동이 제보자들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제보는 지난 8월 15일 광복 80주년 경축식 이후 쏟아졌는데 그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낭독한 일이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 배우 활동까지는 묵인했으나 그가 국민의 대표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모습은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배우 조진웅의 오늘을 만든 게 정의와 조국에 헌신하는 역할 덕분이었는데 그의 몰락과 은퇴를 가져오게 된 결정적 계기가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점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