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희망 불평등

입력 2025-12-08 00:38

저소득 가구 아이들 미래에
더 비관적… 꿈에는 가격이
없는데, 불평등 크고 깊어져

벌써 6년도 더 지난 일이다. 2019년 6월 초 원고지 3장짜리 기사를 썼다. 신문 뒤편 구석에 실렸다가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기사였다.

중학교 1~3학년 청소년의 인기 희망 직업이 전통적으로 선망되던 판·검·의사 등 ‘사’자 전문직이 아니라 연예인·스포츠 스타라는 내용이었다. 통신사가 먼저 이를 앞세워 내보냈고 다른 기사들도 비슷했다.

자료는 2018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였는데 400쪽이 넘었다. 불성실한 마음(3장짜리 쓰는데 이걸 다 뒤져봐야 하나…)과 체념(그래도 봐야지…)으로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마우스 스크롤을 위아래로 굴리며 PDF 파일을 이리저리 쏘다니다가 정작 아동의 희망 직업 변화보다 다른 곳에 시선을 빼앗겼다.

‘1순위 원하는 직업을 실제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 가구와 저소득 가구로 구분된 응답률을 볼 수 있었다. 긍정 응답은 일반 가구 아동이 48.75%(매우 그렇다 16.34%, 그런 편이다 32.41%)로 높았다. 저소득 가구 아동은 29.55%(매우 그렇다 7.95%, 그런 편이다 21.60%)로 일반 가구 아동보다 20% 포인트 가까이 낮았다.

부정 응답은 저소득 가구 아동이 높았다. 저소득 15.62%(전혀 그렇지 않다 4.32%, 그렇지 않은 편이다 11.30%), 일반 8.97%(전혀 그렇지 않다 4.54%, 그렇지 않은 편이다 4.43%)였다. 저소득 가구 아동이 약 2배 높았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도 있다. 저소득 가구 아동 21.73%, 일반 가구 아동 10.54%. 어째서인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본인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여기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은 아직 못 버리는 듯 느껴졌다. 정리하면 저소득 가구 아동일수록 희망 직업 취득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리고 부정적·불확실하게 여겼다.

부서를 옮기고도 보고서가 새로 나올 때쯤이면 틈틈이 찾아보게 됐다. 당시 중학교 1~3학년생이던 아동들이 고등학교 1~3학년이 돼 응답한 2021년 보고서도, 2024년 새로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도 큰 차이는 없었다. 희망 직업 획득 가능성에 대한 긍정 응답은 저소득 가구 아동이 일반 가구 아동보다 일관되게 낮았다.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특정 가구에 태어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니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하는 게 기성세대의 자세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보고서에서 저소득 가구 아동은 일반 가구 아동보다 자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주관적 행복감은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불평등은 아이들이 각자의 계급·계층에 맞춰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절망까지도 그 크기를 스스로 조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평등은 줄곧 크고 깊어진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4일 발표한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구의 순자산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순자산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완전 불평등)는 0.625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올해 3월 기준 5분위(상위 20%) 가구 평균 순자산은 17억4590만원으로 1분위(하위 20%) 3890만원의 44.9배에 달했다.

소득도 불평등하긴 마찬가지다. 5분위 가구의 평균 소득은 1억7338만원으로 전년 대비 4.4%(737만원) 늘었지만, 1분위는 1552만원으로 3.1%(47만원)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소득 상·하위 20% 가구 간 소득 격차는 5.78배로 벌어져 3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K팝, K조선, K반도체, K방산 등 한국은 점점 대단해진다는데, 현실의 불평등은 날로 심해진다. 미래세대의 희망 격차도 커지고 있을 터다.

“꿈에도 가격이 있을까?” 얼마 전 우연히 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한 광고 문구가 눈에 밟힌다. 아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답을 내려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권중혁 산업2부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