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관계가 한 달째 전면 대결로 치닫고 있다. 중국의 대일 압박은 관광·유학 자제, 수산물 수입 제한, 문화 한일령, 군사적 시위, 유엔을 비롯한 외교 무대에서의 공세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은 국내 반중정서 확산에 따라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등의 반격 카드를 내놓고 있다. 가히 중·일 갈등 고조가 점입가경이다.
이번 중·일 갈등의 트리거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지난달 7일 국회 답변이었다. 오카다 가츠야 야당 의원이 ‘대만 유사’와 관련한 안보정책을 집요하게 추궁하자 다카이치는 대만해협 봉쇄를 목적으로 중국이 전함을 사용해 무력행사를 한다면 존립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일본 안보법제에 따르면 일본 ‘존립위기 사태’는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이므로 대만 유사시 자위대가 출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이다.
이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해석됐다.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 중 가장 핵심은 ‘대만 문제’다. 더욱이 중국은 이 발언이야말로 시 주석의 ‘체면’을 훼손한 발언으로 간주했다. 중국은 일본이 1972년 중·일 수교 시 ‘대만이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약속했음에도 이를 정면으로 부정했다고 맹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전시 연합국 합의, 포츠담선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엄밀히 따져 보면, 이 발언은 종래 일본 안보정책 라인에서 보면 ‘튀는 발언’이고 ‘돌출발언’이다. 2015년 제정된 안보법제는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를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사실상 미국을 의미)에 대한 무력공격이 가해질 경우’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일본 국민의 생명 자유 및 행복추구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무너트릴 명백한 위기로 판단한 경우’로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대만 유사에 연루돼 무력공격을 받고, 그것이 일본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상황이 됐을 때만이 집단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다카이치는 두 단계를 점프하는 비약 발언을 했다. 안보법제에서 말하는 타국은 대만이 아니고 미국이며, 따라서 대만 유사가 곧 일본 유사가 아님에도 대만 유사를 일본 존립위기 사태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을 구사했다. 역대 총리들은 존립위기 사태와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고, 애써 지리적 개념 사용을 회피했으며 매우 한정적으로 일본 안보정책을 다뤘다.
다카이치의 발언은 전략적으로 적절했다고 보기 어렵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는 신장·위구르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정상회담 다음 날에는 대만 대표와의 회담 사진을 SNS에 올렸다. 문제 발언이 나오기 일주일 전의 일이다. 더욱이 중국과 관세전쟁을 벌여온 미국은 최근 사실상 휴전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든든한 우군으로 기대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 자극을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내년 4월에는 방중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고, 시진핑의 국빈 방미 초청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고립무원을 자초했다.
각광을 받는 여성 총리로 여전히 70%대 내각 지지율을 유지하는 다카이치로서는 발언 철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사실 그의 발언은 친대만 성향, 강성 안보정책을 지향하는 속내가 은연중에 드러난 것으로 완전한 ‘실언’도 아니다.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을 거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외교적으로는 일본 스스로 궁지로 몰리는 결과를 초래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이번 파동은 최고지도자 외교 발언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