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사법)제도가 그릇된 방향으로 개편된다면 그 결과는 국민에게 직접적이며 되돌리기 어려운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왜곡죄 도입 등 법안을 통과시킨 뒤 나온 작심 발언이라는 평가다.
조 대법원장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인사말에서 “사법제도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한 번 제도가 바뀌면 그 영향이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오랜 세월 지속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제도 개편은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이론과 실무를 갖춘 전문가 판단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조 대법원장은 법원장들을 향해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무겁다”며 “이럴 때일수록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이 우리에게 부여한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내는 것만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밝혔다.
이날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의 당초 안건은 법원별 예산 집행 전문화 방안과 사법보좌관 인사 개편 등으로, 여권의 사법제도 개편 시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등 법안 추진 속도를 높이면서 법원행정처가 지난 2일 급히 안건을 바꿨다. 이 회의는 매년 12월 열리는 정기회의인데, 회의 사흘 전 안건을 전면 교체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바뀐 안건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법안, 법왜곡죄 신설을 담은 형법 개정안 등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 방안이다. 이와 관련, 법원행정처는 지난 2일 법원장들에게 내란전담재판부와 법왜곡죄 등에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원행정처 폐지안에 대한 의견 수렴도 포함됐다.
법원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3일 국회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 분립과 사법권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 대법원장도 같은 날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이뤄진 이재명 대통령과의 5부 요인 오찬에서 “(사법제도 개편은)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중하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법원은 전국법원장회의에 이어 8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개최하며 사법제도 개편 관련 의견 수렴을 이어갈 전망이다. 9~11일은 법원행정처·법률신문 공동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 전문가 의견을 듣는다. 한 고위 법관은 “충분한 의견 수렴 없는 ‘속도전식 입법’은 부작용이 크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윤준식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