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서울 신촌에서 ‘제3 제국’이란 이름의 칵테일 바가 화제가 됐다. 실내에 나치 휘장이 있었고, 종업원은 나치 소년단(유겐트) 복장으로 주문을 받았다. 칵테일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였다. 외신에 알려지자 유대인 단체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당시 지배인은 “분위기만 냈는데 뭔 문제냐”고 했다. 수업 시간에 접했을 뿐 나치가 이스라엘 등 서방권에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정치집단 나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체주의, 증오, 차별을 상징하는 일종의 금기어다. 올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행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나치식 경례를 반복했다. 독일·프랑스 등의 테슬라 공장에서 방화가 일어났고 유럽 내 테슬라 판매량은 반토막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내건 명분이 엉뚱하게 ‘나치 축출’이었다. 자신들의 영토 욕심을 희석시키려 유럽의 역린을 건드렸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치’는 더 이상 소비적 도구가 아니다. 상대를 악마화 하는 극단·진영의 정치 문화가 횡행해지고 있어서다. 문재인정부 당시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성 행동이 ‘나치 전위조직’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여당의 입법 횡포가 나치 사례로 들먹여졌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선 뒤 여야 간 나치 낙인찍기가 일상처럼 번지는 등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나치 전범 처벌하듯 (내란사범이) 살아있는 한 영원히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즉각 “히틀러 총통을 꿈꾸는 이 대통령 입에서 나치 전범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비난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도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검을 통해 주요 인사를 숙청하면 나치류”라고 말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는 “나치 특별재판소”로 불렸다. 나치 낙인은 일말의 이해·배려 없이 상대를 무조건 제압할 적으로 규정한다는 걸 함축한다. 그 증오의 끝은 80년 전 나치 독일 몰락이었다. 남일 같지 않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