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로 단계별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청년 고용 축소 같은 정년연장 부작용을 최소화할 세밀한 정책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인건비 부담을 줄일 임금체계 개편, 고령자 생산성을 높이는 직무 조정 및 재교육, 정년제가 없는 중소기업 근로자 지원 등 중장년·청년·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종합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금·고용 측면에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계속고용 방식에 대한 기업의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우선 법정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영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특임교수는 “한국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해 대기업·공공기관 등 한정된 좋은 일자리를 두고 고령자와 청년 간 세대 갈등이 발생한다”며 “노인 인구에 대한 재정 부담을 짊어질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면 국가 전체 생산성·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도 “정년연장은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시장에 국한된 얘기”라며 “한국은 근로자를 해고하기 어렵다보니 정년이 연장되면 (양질의 일자리에) 청년이 취업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정년연장은 곧 인건비 증가를 의미한다. 근무 기간이 늘어나면 임금도 비례해서 높아지는 현재의 연공형 임금체계 개편이 불가피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법정 정년연장이든,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든 고령 근로자의 임금을 재조정하는 과정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여야 신규 채용을 축소하는 부작용을 완화하고, 정년에 도달하지 않은 근로자의 조기 퇴직을 유도하는 관행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엄상민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성과 무관한 연공급형 임금 체계에서 임금 조정 없이 계속고용은 지속될 수 없다”며 “한국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 때문에 임금 조정이 어려워 재고용 중심 계속고용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엄 교수는 이어 “재고용 임금은 퇴직 전보다 80~90% 수준으로 떨어지지만 이는 청년은 물론 50대 초반 조기퇴직자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부연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도 “핵심 쟁점은 결국 임금체계 개편 방식”이라며 “60세 정년 의무화 당시에도 임금체계 문제를 불명확하게 넘어갔기 때문에 법정 분쟁과 노사 갈등 등 사회적인 비용을 많이 치렀던 것”이라고 짚었다.
최 전 원장은 “임금체계를 바꾸는 문제는 법에 명시할 수 없어 기업 여건과 사정에 따라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도록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며 “60세 이후 근로자에 대한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자의 동의 없이도 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수영 교수도 비슷한 해결책을 주문했다. 그는 “60~65세는 개개인이 건강 상태와 근로 역량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법정 정년연장으로 가기 위해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정년 이후에는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도록 완화하는 등 구체적인 조항을 넣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년연장이 노동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위의 공익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장은 “정년제도가 없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영세 중소기업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며 “정년연장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비정규직 등도 간접적으로 혜택을 받겠지만 노후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소득지원 대책 등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청년 일자리 영향을 줄일 수 있도록 공공부문에는 총정원관리제 등을 없애고, 대기업은 고령자와 청년 고용 현황을 공개하게 하는 등 핀셋 정책으로 상생 모델을 추구하는 대책을 설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시행된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현재 정치권 논의는 ‘언제까지 (정년을) 몇 년 늘릴 것인가’에 치중돼 있는데, 늘어난 고령자가 마주할 업무 환경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률적인 정년연장은 같은 나이대 고령자의 생산성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까지 의무 고용하는 건 기업에 굉장히 큰 부담이고, 젊은 직원에게 업무가 몰리며 세대 갈등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계속고용의 대상이나 처우에 대해서는 기업에게 선택권을 주고,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조성해 고령자의 소득 보전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정년연장된 고령자가 정말 가치있는 노동을 수행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핀란드는 노·사·정이 ‘고령자 친화적 일터’를 위한 직무 조정, 조직의 변화 등을 같이 만들었다”며 “정년연장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사회적대화를 통해 정년연장된 사람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한 대비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은정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정년연장과 함께 직무 교육·재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위해선 교육의 질을 높이고, 실업급여를 받는 기간 동안 직업 훈련을 의무화하는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관련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상은 이종선 허경구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