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금산분리 푼다… 증손회사 통해 자금조달 쉽게

입력 2025-12-04 18:55

정부가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반도체 등 첨단전략산업에 한해 공정거래법이 아닌 첨단전략산업법을 개정해 금산분리 규제를 우회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 부처는 첨단전략산업법에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특례를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례의 핵심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 보유 요건을 현행 100%에서 50%로 낮추는 것과 지주회사 체계에서도 금융리스(금융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반도체 같은 첨단전략산업 기업이 투자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 지주회사가 적은 자본으로 지배력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이 지분 보유 요건을 50%로 낮추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허용된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의 3단계 지주사 체계가 증손회사까지 4단계로 확대된다.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지분을 50%만 가지면 나머지는 외부 투자자금으로 채울 수 있다. 나아가 국민성장펀드 같은 정책자금도 지원받을 수 있다.

지주회사 체계의 금융리스 보유 허용 방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사실상의 금산분리 완화안이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면 안 된다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지주회사는 은행, 보험사 등을 소유할 수 없다. 정부는 이 같은 규제완화 적용 대상을 첨단산업으로 한정하고, 지방 투자 등 조건을 함께 둘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규제완화의 수혜자는 SK그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 SK의 손자회사이자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가 금융업을 하는 증손회사를 세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앞서 SK가 정부에 제출했던 규제완화안과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절반의 지분만으로도 증손회사로 특수목적법인(SPC·금융회사)을 설립할 수 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규제완화에 부정이었지만 공정거래법이 아닌 다른 법을 고치기로 하면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및 김정관 산업부 장관에게 금산분리 원칙의 근간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우회로를 통한 예외적 허용은 찬성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김윤 기자 k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