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수장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해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한국 소비자가 성능에 대해 눈높이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신차 성공을 가늠하는 시험대(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다.
4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메르세데스 벤츠는 다음 달 아시아 지역의 전장부품 구매와 공급사 품질 및 사업 개발을 총괄할 ‘아시아 구매 허브’를 한국에 세운다. 2027년까지 한국에 신차 40종 이상을 출시할 계획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 벤츠그룹 회장은 지난달 한국에 방문해 핵심 파트너인 삼성과 LG 경영진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마이클 로쉘러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한국을 찾았다. 폴스타는 올해 하반기부터 르노코리아 부산 공장에서 북미 수출용 ‘폴스타4’를 시범 생산하고 있다. 로쉘러 CEO는 “부산 공장은 아시아와 북미를 연결하는 생산 기지로 전략 거점”이라며 한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달 슈퍼크루즈 기능을 한국에 도입했다.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달릴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이다. GM이 슈퍼크루즈를 공식 출시한 건 북미와 중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대접이 달라진 배경엔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가 자리한다. 깐깐한 한국 소비자에게 인정받으면 다른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깔려 있다. 한국 판매 실적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을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 거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국내 진출한 수입차 회사가 한국의 ‘올해의 차’ 수상에 남다른 신경을 쓰는 것도 그만큼 한국의 평가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기차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점도 글로벌 완성차기업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전기차 판매량은 지난해 14만6902대에서 올해 이미 20만대를 넘었다. 미국과 유럽 등은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는 추세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전기차 시장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국산차 가격이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수입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경쟁력을 테스트하는데 매우 적합한 시장”이라며 “수입차에 대한 가격 저항마저 줄면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갈수록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