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대지진 이후 황폐한 가상 상황을 다룬 영화 ‘콘크리트 마켓’(사진)이 3일 개봉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배우 이병헌·박서준·박보영이 주연한 엄태화 감독의 2023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하지만, 독립된 서사를 다루는 별개의 작품이다.
영화는 재난 이후 생존 구조를 ‘마켓’이라는 공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 사이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에 물건을 사고파는 ‘황궁마켓’이 자리 잡는다.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거래를 시작하고 현금 대신 통조림이 화폐로 쓰인다.
냉혹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원리가 그대로 작동된다. 다량의 식량과 의약품을 장악한 사람이 권력을 쥐고, 1~9층 층별로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9층에 사는 상인회장 박상용(정만식)은 ‘왼팔’ 태진(홍경)이 이끄는 수금조를 통해 매일 통조림을 상납받는데, 어느 날 나타난 소녀 희로(이재인)가 기존 질서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영화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선택을 조명한다. 동맹과 균열, 배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혼돈 속에서 남다른 지략으로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희로의 존재감이 빛난다. 주요 인물의 연령대를 10~20대로 설정해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이 시대 청년 세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비춘다.
홍기원 감독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10대가 극한 상황에 어떤 결정을 해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희로 역을 맡은 이재인은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성장하다가 성인이 되며 갑자기 들이닥치는 변화들이 개인에게는 재난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젊은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라고 말했다. 러닝타임 122분. 15세 관람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