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하나님 이야기 속에 닻 내리게 하는 시간

입력 2025-12-05 03:06

대림절은 교회 절기 가운데 가장 설레는 절기입니다. 새해를 준비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적잖은 이들이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교회 전통이 알려주는 대림절의 기도와 전례, 실천은 더 깊고 풍성한 영성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시간과 서사의 관계, 전례력과 이야기의 연결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전례력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이야기를 실행한다…그 이야기를 선포하고 몸으로 살아내며 마음과 정신에 깊이 심으면서 말이다.” 이 문장은 책 전체를 요약합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에게 들은 이야기를 마음에 새기듯 하나님 이야기를 마음에 새깁니다. 해마다 교회력을 따라 “성경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곱씹으며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대림절은 본질상 ‘반문화적 성격’을 지닌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우리가 ‘다른 백성’임을, 이 세상 질서에 뿌리내릴 수 없는 순례자임을 기억하게 합니다. 저자는 지배 문화에 편입되려 하거나 그 기준에 소심하게 굴복했을 때가 교회사에서 가장 위험했던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대림절은 소비로 정체성을 확인하라고 재촉하는 대중문화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게 합니다. 대신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연대, 회개와 정의, 침묵과 찬미의 이야기를 따라 살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전례력과 이야기는 현대 사회의 실존적 결핍에 대한 하나의 신학적 응답이기도 합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말합니다. “전근대에는 삶이 이야기 속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식으로 나열되는 게 아니라 부활절 오순절 성탄절 식으로 구성돼 있었다.” 대림절은 이 서사의 위기 한가운데서 우리의 삶을 다시 하나님 이야기 속에 닻 내리게 하는 교회의 시간입니다.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매우 흥미로운 주제는 몸, 특히 여성의 몸입니다. 저자는 대림절을 자궁의 심상과 연결하며 성육신의 신비를 몸 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신비 속에서 새롭게 해석합니다. 여성이자 사제인 저자만이 건넬 수 있는 교회론적인 통찰이 빛납니다. 매년 돌아오는 대림절이 연말의 한 조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하나님 이야기 속에 닻 내리게 하는 소중한 시간임을 배우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을 기쁨으로 추천합니다.

차보람 교수(성공회대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