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협상 타결에도 환율 상승 당국은 서학개미 겨냥했다
성장 후퇴라는 본질 외면에다 갈라치기와 내로남불까지
실패한 부동산 대책과 흡사 기본 아닌 꼼수 통하지 않아
성장 후퇴라는 본질 외면에다 갈라치기와 내로남불까지
실패한 부동산 대책과 흡사 기본 아닌 꼼수 통하지 않아
한동안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의 주된 이유로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약 514조원) 지급에 대한 부담이 꼽혔다. 그런데 10월 말 관세협상이 타결돼 불확실성이 줄어들었음에도 이후 원·달러 환율이 40원 이상 오르며 1470원 안팎(4일 종가 1473.5원)이 되자 정부 당국이 당황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올해만 미국 주식에 사상 최대 306억 달러를 쏟아부었다는 서학개미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서학개미에 대한 과세 강화 질문에 “검토 안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진심은 뒤에 나왔다. “다만 정책이라는 것이 상황 변화가 있으면 언제든 검토하는 것이어서 (과세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다음 날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힘을 실었다. “환율이 1500원을 넘는다면 한·미 금리 차 때문이 아닌 내국인들의 주식투자가 많아서다.” “젊은 분들에게 왜 이리 해외투자를 많이 하냐고 물어봤더니 답이 ‘쿨하잖아요’라 하더라.” 청년들이 유행에 휩쓸려 해외주식을 마구 사는 바람에 환율이 오른다란 얘기다. 이어 정부는 내년 1월까지 증권사의 과도한 해외주식 투자 조장 행태에 대해 특별 점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일련의 흐름이 당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환율 상승은 서학개미가 주도하고 있고 여차하면 이들에게 세금을 더 매길 수 있으며(정부는 뒤늦게 부인했다) 서학개미를 부추기는 증권사를 다잡겠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이 총재가 자녀들의 해외 유학비로 20억원을 썼고 한은의 모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미국 주식 41억원어치를 보유한 사실이 소환됐다.
왠지 낯익은 풍경이다. ‘문제의 본질(공급 부족)에 눈감는다.’ ‘시장 플레이어(임대인·갭투자자)의 순기능은 외면한 채 갈라치기·악마화 한다.’ ‘당국자들이 내로남불로 정책 신뢰성을 잃는다.’ 문재인정부, 현 정부에서 거듭 실패한 부동산 대책의 모습 아닌가.
본질부터 보자.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인 환율은 통화량, 국가의 성장 여부와 불가분 관계다. 한국은 지난 3년여 간 통화량(M2) 증가율이 20%를 넘었다. 같은 기간 미국 통화 증가율(약 3%)의 7배 수준이다. 정부는 향후 4년간 국가부채를 487조원 늘리는 재정확대 정책을 펼친다. 내년 적자 국채만 110조원을 발행한다. 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15배나 큰 미국보다 뒤처지고 미국 금리보다 낮은 금리 차 역전 현상도 역대 최장 4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현재도 미래도 우리 시장에 돈이 계속 풀리는데, 경제는 하강하고 이자도 미국에 비해 낮다. 환율이 안 오르고 돈이 미국으로 빠져 나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개미의 미국행은 환율 상승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임에도 당국은 반대로 해석했다. 충분한 공급 대신 뛰는 값에 규제 메스부터 대던 부동산 대책처럼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
나라의 대외지급능력을 보여주는 순대외금융자산은 올 3분기 1조562억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8% 늘었다. 서학개미의 주식투자가 상당부분 포함됐다. 외환시장의 버팀목이자 경상수지 흑자의 요인이기도 하다. 동학개미와 달리 22%의 양도세도 내 세수 면에서도 효자다. 환율 하나로 손가락질 하는 게 타당한가. 주택 공급의 주체인 임대인을 다주택 투기꾼으로 몰아세우고 갭투자자들을 단죄해 주거사다리를 끊어 서민 주거 현실만 악화시킨 부동산 난맥상과 판박이다. 더구나 현재 해외주식 투자는 청년층보다 4050 세대의 비중이 더 높다(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발언). 젊은이를 콕 집어 비꼬는 식의 언행이야말로 갈라치기의 전형 아닌가.
사실 서학개미 현상과 부동산 문제는 별개 사안이 아니다. 홍콩계 투자은행 CLSA는 한국 내 미국 주식 투자 열풍이 값비싼 부동산 가격, 부의 불평등과 연관돼 있다고 진단했다. 청년들은 넘사벽이 된 부동산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해외 주식에 눈돌리고 있는 것이다. 쿨함이 아닌 절박함의 몸짓이다.
어느 문제나 마찬가지지만 환율 해법은 기본에서 찾아야 한다. 본질(쇠락하는 경제)을 직시해야 한다. 방만한 재정을 단속해 경제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초격차 기술 지원에 전폭 나서 국내 투자로 자본 물꼬를 틔워줘야 한다. 서학개미들이 돌아오도록 혁신과 창의의 선도 한국기업을 만들 정책 발굴, 노란봉투법 같은 반기업 정책의 시정도 시급하다. 정답이 있어도 오답을 고집하는 진보정권의 부동산 폭망사는 환율 대책의 반면교사일 뿐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