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분열의 입증책임

입력 2025-12-05 00:35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이란 어떤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범인의 죄를 입증해야지 피고인이 스스로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 놓고 그가 범인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이 원칙은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기독교 교단 간 통합 논의를 예로 들어 보자.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는다. “각자 잘 지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합치려 하는가?” 언뜻 자연스러운 질문 같지만 사실은 입증책임이 뒤집힌 질문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교회가 정상이고 분열된 교회가 비정상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계속 분리된 채 있어야 하는가?”이다.

분리 상태를 유지하려면 그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상대 교단이 성경관, 삼위일체론, 기독론, 대속론 등 근본 교리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거나 윤리적 일탈이 심각해 신뢰할 수 없다는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반면 비본질적 교리 차이, 예배 스타일 차이, 역사적 오해, 정치적 갈등 등은 분열을 지속할 이유가 되기 어렵다. “우리는 칼뱅을 따르고 저들은 웨슬리를 따르니 합치기 어렵다”고 말한다면 천국에 있는 칼뱅과 웨슬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강조하고 너희는 성령님의 능력을 강조하니 함께 갈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서로 대립시키는 셈이다.

신학적 전통이나 정체성은 결국 과거 분열의 흔적이다. 그것이 불가피한 분열이었을 수도 있고 욕망에 의한 분열이었을 수도 있다. 오랜 세월 따로 지내다 보니 분열은 정당화되었고 그 상태가 익숙해졌다. 그러나 지상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신 주님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으실 것이다.

이 원리는 남북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누군가 통일을 말하면 사람들은 통일의 이익을 묻고 따진다. 그러나 이것도 입증책임이 거꾸로 된 질문이다. 같은 민족이 적대적 분열을 지속하는 것은 성경적 질서에 맞지 않는다. 남북이 어떤 모델로 공존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성경이 특정 형태의 통일까지 지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통일의 당위성은 우리 헌법적 가치에서도 확인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라고 선언하고,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제4조는 국가의 정체성을, 제66조는 그 의무의 주체를 분명히 밝힌다.

남북문제는 교단 통합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나누어진 상태가 불완전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분단을 유지하려면 그 책임을 주장하는 쪽이 져야 한다. 현재의 대치 상태가 정말 더 안전한지, 군사적 억제력이 평화를 보장하는지, 분단이 초래하는 군사·경제·사회적 비용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지, 지속되는 인도적 고통과 긴장 고조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인도적·문화적·기후환경적 협력마저 막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다. 광복 80년이 곧 분단 80년인데, 한 해가 다 가도록 의미 있는 통일 논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뿐 아니라 북한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했다는 말까지 들리니 더욱 씁쓸하다.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는 분열이 죄라는 사실을 잊은 채 살아가는 듯하다. 분열된 세월이 너무 길어 그 상태가 자연스러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상태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하나가 되면 왜 안 되나.”

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