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교회 다니는데 명상을 해도 괜찮을까요” “명상을 하다가 사탄이 틈타면 어떡하죠.”
불안장애와 트라우마(심리적 외상) 분야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채정호(사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실에서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를 포함한 각종 재난경험자 코호트(cohort) 추적을 시행해온 채 교수는 2009년부터 지금껏 대학병원 내 불안·스트레스 클리닉에서 마음챙김과 명상 등이 포함된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적잖은 환자가 효과를 본 프로그램임에도 신앙적 이유로 참여를 주저하는 이들에게서 그가 읽어낸 건 일종의 두려움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믿음을 지키려는 간절함과 함께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금기시돼온 어떤 침묵이 포함”된 복합적 감정이었다. 채 교수는 이를 제거함과 동시에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기독교적 명상으로 치유 기회를 제공하고자 이 책을 썼다.
책의 제목이자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표현인 영성챙김(Spiritfulness)은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은 아니다. ‘성령 가득한 마음챙김’이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저자가 만든 개념어에 가깝다. 그는 이를 명상과 마음챙김과 비교하며 그 차이점을 명확히 한다. 특히 “영성챙김은 요즘 유행하는 명상과 마음챙김을 기독교 신앙에 단순히 접목하자는 게 아니”라며 “말씀과 하나님 임재로 자신을 채우고 영성을 회복하는 개념이다. 마음을 비우거나 자아를 신격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들 개념을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해 가상 토론 형식을 채택했다. 보수 개신교 목사와 가톨릭 사제, 영성은 추구하나 종교는 거부하는 다음세대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개신교 목사, 개신교 신자인 심리학자 및 저자 자신까지 모두 5명이 참여하는 가상 대화다. 보수 개신교 목사가 “명상은 동양 종교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 가톨릭 사제가 “우려는 이해하나 가톨릭 전통엔 오래전부터 관상기도 형태의 명상법이 있다”고 답하는 식이다. 이 대화에서 저자는 “‘하나님 앞에서 명상은 가능한가’란 질문에 대해선 답을 명쾌하게 내리기보단 경청과 분별,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중요한 건 명상의 형식이나 방식이 아닌 그 방향성과 중심”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실제 기독교 전통에서 명상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성 안토니우스를 위시한 사막 교부들은 기도와 금욕, 묵상과 침묵으로 하나님과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의 가르침은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지금도 활용 중인 영성 훈련법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저자는 개신교인에게 널리 알려진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저자 로렌스 형제와 ‘상처 입은 치유자’ 저자 헨리 나우웬, 영성 갱신 운동 ‘레노바레’를 이끈 리처드 포스터 등을 열거하며 기독교 명상 운동의 흐름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경에도 기독교 명상과 관상기도의 뿌리를 살필 수 있는 본문이 적잖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시편 1, 8, 119편 속 간구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예수의 광야 기도 및 주기도문 등이 대표적이다.
40년 가까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20여년간 영성과 정신건강의학의 접점을 탐구해온 그는 책에서 자신이 높은뜻푸른교회 장로임을 여러 번 밝힌다. ‘전문가랍시고 교계의 우려를 무시한다’는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저자는 “잘못된 명상 실천은 인간 중심적 자기 몰입이나 종교 혼합주의로 흐를 수 있다”면서도 “유익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우려만으로 기독교의 명상 전통을 전면 배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수용과 경계란 긴장 속에서 하나님 중심성을 잃지 않고 명상을 재해석하는 게 현대 그리스도인의 영성 회복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올해도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개신교인도 이 수치에선 예외가 아니다. 신학적으로 올바른 명상법을 제시하는 데 한국교회가 더는 주저할 때가 아니다. 저자의 바람처럼 관련 논의의 “마침표가 아닌”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