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기빙 튜스데이

입력 2025-12-05 00:40

미국에서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말 그대로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날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소비 폭주 행사가 벌어진다. 이도 모자라 사이버먼데이까지 생겨 온라인 소비 축제로 이어진다. 이 기묘한 감사와 소비 폭주가 매년 반복되니, 미국인들도 살짝 부끄러웠던지 사이버먼데이 다음날인 화요일을 ‘기빙 튜스데이(Giving Tuesday)’로 정했다. 2012년 뉴욕의 비영리단체 92번가 Y와 유엔재단이 블랙프라이데이 소비에 취한 사회에 베풂의 하루를 붙이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90여개 나라가 참여하는 세계 기부의 날이 됐다.

올해 기빙 튜스데이엔 유독 큰 뉴스가 터졌다. 미 델 컴퓨터 창업자이자 전 세계 부호 10위에 등재된 마이클·수전 델 부부가 무려 63억 달러(약 9조원) 기부를 발표한 것이다. 미국 10세 이하 아동 2500만명에게 250달러씩 투자계좌를 만들어주고, 정부가 신생아에게 주는 ‘트럼프 계좌’의 1000 달러 역시 델 테크놀로지스 직원 자녀에게는 동일하게 매칭해 주겠다고 했다. 델 부부의 방식은 기존 기부와는 결이 다르다. 재단·기관·학교를 거치며 흐릿하게 사라지는 전통적 기부 방식이 아니라, 아이들 계좌로 곧장 꽂히는 직접 기부다. 게다가 그 계좌는 인덱스펀드에 투자돼 미래 세대의 금융 감각을 키워주도록 설계됐다. 청년희망적금, 청년도약계좌, 청년미래적금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도 바뀌면서 흐지부지되는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더 대비가 선명해진다.

우리나라 재벌의 기부는 총수의 법적 리스크가 불거질 때 등장하곤 했다. 그 돈도 그룹 산하 공익재단으로 들어가 기업 지배구조 안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다. 사회 전체의 미래를 위해 ‘직접’ 자산을 심어주는 델 부부 방식과는 지향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은 민간의 실험과 정부 제도를 맞물리며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 감사→ 소비 폭주→ 기부라는 미국식 순환이 아이러니해 보일지라도, 적어도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하는 흔적은 분명하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