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쓰인 문학작품 중 3대 비극으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함께 허먼 멜빌의 ‘모비딕’이 꼽힌다고 한다. 비록 비극으로 제한되긴 했지만 이는 멜빌이 문학사 속에서 갖는 남다른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특히 멜빌의 대표작 모비딕은 세계문학사에 찬연한 이름으로 우뚝하다.
멜빌은 1819년 8월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 소설가이다. 유럽에서 이주해온 무역상 가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자 학업을 중단하고 여러 직업을 거쳤다. 스무 살이 되어 상선을 타고 바다에 처음 나서게 되어 바다를 향한 강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포경선을 타고 4년여 동안 남태평양을 누볐고 그 시간은 그를 일찌감치 모비딕의 작가로 예약해놓았다.
1846년 멜빌은 첫 소설인 ‘타이피’를 펴냈다. 미국에서 환영받지 못한 이 작품은 오히려 영국으로 건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여기서 힘을 얻은 그는 바다 경험을 시리즈로 하여 여러 소설을 잇달아 쓴다. 얼마 후 완성한 모비딕(1851)은 이슈마엘이라는 1인칭 화자에 의해 기록된 포경선 일지(日誌)다. 선장 에이허브는 거대한 흰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후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간다. 선장의 광기와 절대 권력, 고래와의 사투 끝에 난파되는 포경선, 모든 선원이 수장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성경의 인용이 나온다. 멜빌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문장과 스타일 안에 종교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담아냈다. 하지만 당대 독자들은 전혀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했다. 뒤늦게 이 작품의 종교적 면모가 재평가되면서 모비딕은 작가 사후에야 그 가치가 재발견돼 미국 문학 최고 걸작의 지위에 오른다. 흰고래는 절대적 신 혹은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실체를 상징하고, 에이허브는 인간의 집착과 오만으로 인한 파멸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18~19세기 사회상과 포경업의 배경은 물론 근대 기독교 문화나 정신을 순례할 수 있는 대작임이 틀림없다.
모비딕 후 2년 만에 발표한 중편소설 ‘필경사 바틀비’(1853)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19세기 소설의 고전이다. 월가 이야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미국 금융 경제의 중심 월스트리트를 배경으로 하여 당시 새롭게 움트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벽의 거리’라는 이름이 환기하는 월스트리트의 폐쇄성과 억압성은 뉴요커였던 멜빌이기에 누구보다 실감 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소재였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어떤 종교적 서사가 흐른다. 그것은 남은 자(The Remnants)로서 주인공 바틀비의 모습이다. 권력의 지침을 함축하는 명령에 대하여 주인공은 한결같이 비타협적으로 대응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라는 기이하면서도 절묘한 표현을 통해 남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각인해가는 필경사 바틀비의 운명은 지금도 우리에게 크나큰 감동을 던져준다.
이 소극적 항변은 비록 물리적 투쟁은 아니지만 지배 체제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신성한 저항적 행위다. 바틀비의 생애는 자본과 노동, 율법과 사랑, 삶과 죽음의 문제 등 수많은 대립 쌍을 환기해준다. 이 작품에 ‘필경사=작가’라는 등식을 개입시키면 한 편의 빼어난 예술가 소설이 된다. 어딘가 어두워 보이고 말이 없는 그의 모습은 필경(筆耕·글로 생계를 유지한다)이라는 말이 함축하듯 작가의 은유적 형상으로 모자람이 없다. 관례를 벗어난 그의 명령 거부는 작가의 특권인 자유와 독립성을 선명하게 상징하는 것이다. 해고를 통보받고도 사무실을 떠나지 않다가 구치소에 넘겨진 바틀비는 그곳에서 벽을 마주한 채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그는 ‘열린 벽’ 월가에서 격리되어 ‘닫힌 벽’ 교도소를 택하여 스스로 사라져갔다.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형상은 청년 예수의 모습을 강렬하게 환기한다. 바틀비의 저항은 권력 자본 합리성 같은 주류적 흐름을 향한 것이었지만, 율법이나 종교 권력을 향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이 소설은 저항적 종교 서사를 품고서 2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온 우리 시대의 소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