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독서 하면 조용한 방에서, 혹은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혼자 책장을 넘기는 모습을 쉽게 떠올린다. 그렇다면 책을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개인의 영역을 넘어 개인과 개인을 연결할 때,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찾아 다양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독서 기반 지역 활성화’와 ‘책 읽어주는 문화 봉사단’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모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24~2028)’을 시행 중이다.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5년마다 수립·시행하는 기본 계획으로 4차의 핵심 목표는 ‘비독자의 독자 전환’이다. 올해 처음 진행된 ‘독서 기반 지역 활성화 사업’은 누구나 생활권 내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게 하는 한편, 지역 사회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낳고 있다. 중앙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고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실태에 맞는 창의적인 독서 캠페인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이천시에서는 지난 10월 ‘난생처음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야외 독서 축제가 진행됐다.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광장은 도서관을 자주 찾지 않던 시민이 책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3주간 열린 행사에 2만여명이 다녀갔다. 시민들은 빈백(bean bag)과 텐트를 설치한 ‘독서 구역’에서 가을의 정치를 느끼며 편안하게 책을 읽었다. 독서 골든벨, 종이비행기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와 소설가 김영하 등 유명 작가들의 북 토크도 진행됐다. 특히 이천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20여곳이 참여해 어린이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첫 경험을 선사했다.
이천시는 또 ‘난생처음 도서관’ 행사 기간 카페와 빵집 등 골목 상점 10여곳에 책과 책장 등을 지원하는 ‘당신 곁의 아주 작은 도서관’을 운영했다. 참여 상점을 방문해 확인 스탬프를 받으면 선물도 증정했다. 각 상점은 자주 찾는 이용층을 고려한 책들을 비치하고, 이천시도서관은 각종 홍보물과 SNS 등을 통해 ‘책세권’ 상점을 홍보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업에 참여한 상점 주인은 SNS를 통해 “스탬프 투어를 위해 종종 방문하는 분들도 있고, 기다리는 동안 잠깐씩 책을 들추는 손님도 있었다”면서 “책세권 사업이 끝나면 자체적으로 (특정 분야의 책을 추천하고 전시하는) 북큐레이션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는 글을 올렸다.
전북 전주시는 독서와 여행을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로 5년째를 맞은 ‘전주 도서관 여행’은 체험형 인문 관광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용 버스를 타고 해설사와 함께 전주만의 특색이 있는 도서관 20여 곳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119차례 1600여명이 참가한 지난해에는 전주 시민 외 다른 지역 참여자 비율이 43%에 달했다. 올해는 도서관과 지역 서점, 문화공간 40곳을 주제별 6개 코스로 구성한 ‘전주 도서관 산책 스탬프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해 사람들이 편한 시간을 선택해 독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전주시는 또한 도서관의 경계를 넘어 ‘직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움직이는 북큐레이션’도 운영 중이다. 마음 치유, 인간관계, 변화하는 세상 따라잡기 등 주제별 70여권의 책으로 특별한 서가를 제공한다. 도서관에 방문할 여유가 없는 청년 직장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책과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독서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다.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전주시만의 특별한 성과도 보인다. 2021년 76곳이었던 지역 서점은 올해 95곳으로 늘어났다.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은 문화 소외 계층에게 문화적 기회와 균등한 독서환경을 제공하면서 독서 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한편, 공공 일자리 창출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는 프로그램이다. 문화봉사단은 50세 이상 활동가를 모집해 노인과 아동, 장애인을 직접 찾아 책을 읽어주는 것은 물론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전국 8곳의 주관처에서 161명의 활동가가 봉사활동을 펼쳤다. 봉사단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지난해만 2만2000여명, 최근 5년 동안 12만명이 넘는다. 특히 실버세대 활동가와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이 연결되면서 세대 간·계층 간 소통의 장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성과가 확인된 만큼 더 많은 예산 지원을 통한 프로그램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원이 한정돼 있어 아직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많기 때문이다. 올해 문화봉사단 주관처 8곳 중 4곳이 수도권에 배정돼 있고, 강원·경상·전라·충청권역에는 각 1곳 뿐이다.
지난해 발행된 문화봉사단 활동가들의 수기집에는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다양한 경험이 녹아 있다. 그중 책의 의미를, 또 책을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하는 문장이 있다.
“책은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게 해 주고 속마음을 알게 해 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책 놀이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고 자존감도 높여주고, 잊어버린 옛 추억도 생각나게 해 주었습니다. 책을 함께 읽고 나누는 일은 힘든 마음을 정리하며 사람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엄청난 일을 하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