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시턴 동물기’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학자 어니스트 톤스 시턴의 100년 전 저작 ‘사냥감의 삶’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동안 우리는 야생동물을 어리석고 야만적인 짐승으로 여겨왔지만 사실 그들을 그렇게 묘사한 우리가 겁쟁이이자 거짓말쟁이였을지도 모른다. 진실을 찾는 여정은 충격적이면서도 기쁨이 가득했다.” 여기서 키워드는 ‘진실’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추적하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동물에 대한 무지를 하나씩 털어내고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아득히 먼 옛날, 동물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였나. 구석기 시대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벽화 속 소와 사슴의 움직임은 요즘 봐도 경이로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선사시대 인간에게 동물은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하느냐에 생사가 걸려 있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사냥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인간에게 유용한 특성을 가진 동물들을 선별적으로 가축으로 키웠고 나머지 야생 동물은 악마화했다. 저자는 “인간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 듯 행동했다”고 말한다.
권력자들에게 야생 동물 사냥은 스포츠였다.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은 콜로세움을 지어놓고 사자 사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야수의 왕’ 사자와 승부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로마 전성기 황제 트라야누스는 수많은 관중 앞에서 야생 동물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120일 동안 학살된 동물이 1만1000마리에 이른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통조림처럼 제한된 구역에 동물을 가둬놓고 사냥하는 ‘통조림 사냥’은 놀이이자 하나의 상품이 돼 있다. 남아프리카의 ‘통조림’ 안에서 암사자를 사냥하는 데 드는 비용은 4000파운드(약 770만원)에 불과하다. 1970년대 아프리카에서 40만 마리가 살았던 사자가 지금은 불과 2만 마리밖에 안 남았지만 사자 농장 200곳에는 8000마리가 좁은 울타리 안에게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동물을 낮잡아 보는 인간의 생각은 뿌리가 깊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통해 자연을 열등한 존재에서 고등한 존재로 이어지는 위계적 질서로 바라봤다. 당연히 최정점은 인간이었다. 서양 근대철학의 문을 연 르네 데카르트에게 동물은 ‘정교하게 조립된 자동 기계’에 불과했다. 동물은 언어도 지능도 감정도 이성도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특별한 우리’와 ‘열등한 그들’이라는 이분법이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서서히 자연은 인간과 구분된, 정복하고 길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도 포함된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이라는 인식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선구적인 인물은 독일의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여행가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였다. 그는 1799년에서 1804년까지 이어진 남아메리카 탐험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돼 있다”는 통찰을 얻는다. 그 속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물망처럼 연결된 생태계는 수많은 매듭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유지될 수 없다. 가장 극적인 실험은 1963년 미국 워싱턴주 마카만에서 이뤄졌다. 해양생태학자 로버트 페인은 좁은 바다 웅덩이에서 자주불가사리를 바위에서 떼어내 깊은 바다로 던져버렸다. 그 웅덩이는 홍합, 성게, 해조류, 연체동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작은 생태계였고, 불가사리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2주마다 실험을 반복했고 1년 반이 지나자 작은 생태계에 서식하던 생물 종은 15종에서 8종으로 줄었다. 7년이 흐른 뒤에는 바위 전체가 홍합으로 뒤덮여 나머지 생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저자는 “생태계란 실타래처럼 촘촘히 얽힌 하나의 세계”라며 “어떤 생명이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사라진 뒤에야 알게 된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동물 한 마리가 사라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아닌가”라고 반문하기 일쑤다. 저자는 이런 생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인도의 독수리 사례를 든다. 독수리는 “그냥 있으면 좋은 존재”가 아니다. 독수리는 인도 전역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병든 소에게 디클로페낙이라는 값싼 소염제를 투여하면서 소의 사체를 뜯어먹던 독수리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5000만 마리에 달했던 독수리 가운데 4000만 마리가 사라졌고, 120만t에 이르는 소와 물소의 사체가 여기저기서 썩어 나갔다. 몰려든 들개는 550만 마리까지 불어났다. 그리고 4만7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광견병으로 죽었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없어도 그만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진짜 대답”이라고 말한다.
지구 육상 생태계에서 야생 동물군이 온전히 남아 있는 곳은 2.9%뿐이다. 저자는 이제 모두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한다. 저자는 남편과 함께 영국에서 소규모 자연보호구역을 조성해 생태계 복원에 힘쓰며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리와일딩(rewilding·재야생화) 운동에 작게나마 기여하고 있다. “생명은 서로를 지탱하며 이어진다. 동물은 우리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바로 우리다.” 곱씹어 볼 만한 저자의 외침이다.
⊙ 세·줄·평 ★ ★ ★
·동물들아 오해해서 미안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아닌가’라는 생각을 접게 만든다
·7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지만 한 문장도 뺄 수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