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논의 진척이 쉽지 않은 건 이 문제가 중장년에게는 생계 안정, 청년에게는 일자리 기회, 기업에는 인건비 부담이라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역시 정년연장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키우는 한 배경이다. 2016년 ‘60세 정년’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기업 현장에선 정년을 채운다는 희망보다 50대 조기퇴직을 걱정하는 ‘김부장’들의 한숨도 여전하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55~64세 인구 중 생애 취업 경험이 있는 사람은 844만1800명이다. 이 중 주된 일자리(생애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지속하는 사람은 321만2000명(38.7%), 그만둔 사람은 508만9000명(60.5%)으로 집계됐다.
법정 정년 65세 연장 논의는 60세 정년 나이와 연금 수급 연령인 65세(2033년 기준) 사이의 ‘소득 공백’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현실 중장년의 ‘실제 퇴직 연령’은 49.2세로, 연금 수급 연령과 10년 이상의 간극이 있다. 주된 일자리를 그만둔 연령은 50~59세라는 응답이 47.2%에 달했고, 40~49세가 23.2%로 뒤를 이었다. 60~64세에 그만뒀다는 응답은 15.4%에 그쳤다.
조사 대상 연령을 55~79세로 범위를 넓혀도 주된 일자리 퇴직 나이는 52.9세, 평균 근속 기간은 17년 6.6개월(남성 21년 6.6개월, 여성 13년 8.1개월)이었다.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과 평균 근속기간은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기는 하지만, 중장년 상당수는 ‘사업부진, 조업중단, 휴·폐업’(28.7%) ‘건강이 좋지 않아서’(18.6%) 등의 이유로 주된 일자리를 떠나고 노후를 위해 다시 재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실정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팀장 A씨는 “퇴직금이 퇴직 직전 3개월 임금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적용 전에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나가는 게 더 유리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한다”고 말했다. 바늘구멍 승진에서 밀리면 한직으로 발령 내 퇴직을 유도하는 관행도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기업 임원 승진 확률이 1%도 안 되는데, 숙련 기술직이나 전문직이 아닌 이상 안정적으로 60세까지 회사에 남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년 제도 자체가 노동시장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아예 정년제를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300인 이상 기업의 정년제 운영 비율은 95.1%, 100인 이상 기업은 93.4%였지만, 100인 미만의 경우 그 비중이 22.5%로 뚝 떨어졌다.
노조의 유무도 정년제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300인 이상 기업 중 노조가 있는 곳은 정년제 운영 비율이 99%로, 없는 곳(89.5%)보다 9.5% 포인트 더 높았다.
10인 미만 사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청년들이 기피하는 중소기업은 중장년이나 고령자 채용이 불가피해 정년의 의미가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중소기업은 사업체 운영 기간이 7년 이하인 비중이 59%(2023년 기준)에 달해 직원이 정년까지 도달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분석도 있다.
경영계는 관련 법을 개정해 일괄적으로 정년을 끌어올려도 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 노조가 있는 사업체 위주로 혜택을 볼 거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근속연수에 비례해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형 임금체계(호봉제)도 정년 논의 과정에서 풀어야 하는 난제다. 정년 상향은 기업 내에서 직급이 높은 고임금 근로자들의 대거 증가를 의미한다. 60세 정년 도입 당시에는 일정 나이에 도달하면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제도화했고, 이후 임금피크제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송이 줄을 이었다.
무엇보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증가하면 그만큼 신규채용을 줄이게 되고, 결국 청년들의 취업난 가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년연장 문제가 세대 갈등을 촉발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고령층 근로자 1명이 늘어나면 청년층 근로자 0.4∼1.5명이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노동계는 고령자의 소득 보장과 고용 안정성을 위해 ‘기존 임금체계 유지하는 정년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국고용정보원이 2023년 말 진행한 계속고용제도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재고용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재고용 이전 대비 88.8% 수준이었다. 다만 당시 50대 이상 근로자들을 정성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 정도는 재고용제도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계는 계속고용 논의에 앞서 임금체계 개편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현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할 경우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합리성이 인정되는 임금체계 개편’인 경우에는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