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는 계속 비어가는데’… 임대료 못 내리는 속사정

입력 2025-12-04 00:11
서울 명동에 한 상가에 폐업, 임대를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김지훈 기자

경기도 하남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임대인 이모씨는 요즘 시름이 깊다. 지난 5월 이후 6개월 넘도록 새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면서다. 수억원 대출을 받아 상가를 분양받았는데 대출 이자만 계속해서 나가고 있다. 이씨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문의 자체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임대료를 낮추면 잘 나갈까 싶지만 이 또한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상가 특성상 건물값이 임대료와 연동되기 때문이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의 높은 공실률이 굳어졌지만 정작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다. 공급 초과, 소비 패턴의 변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등 제도적 경직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부동산 때문에 힘들다”고 호소한다. 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를 보면서 매우 공감했다던 윤모씨는 “한 번 임대료가 정해지면 올리기가 쉽지 않으니 처음부터 높게 부른다”며 “상가 하나 있으면 미래가 밝을 줄 알았다는데 아니더라”고 말했다.

3일 알투코리아부동산투자자문의 ‘12월 부동산 마켓 브리프’에 따르면 국내 상업용 부동산은 집합상가 10%대, 중대형 상가 13%대의 높은 공실률이 굳어지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전국 상업 시설별 공실률은 중대형 상가가 13.4%, 집합상가 10.5%, 소규모 상가는 7.5%를 기록했다. 지방과 수도권 신도시에선 공실률이 20%를 웃도는 ‘유령 상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중대형 상가는 세종(26.7%)과 충북(20.2%)에서, 집합상가는 울산(21.4%), 전남(23.2%), 경북(26.7%)에서 공실률 20%를 넘어섰다.


높은 공실률과 높은 임대료라는 두 가지 문제가 팽팽하게 맞서는 데는 구조적인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적정 수요를 초과한 고분양가 공급이 문제가 됐다. 특히 2020~2022년 지식산업센터(지산)가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으며 지산 내 상업시설이 난립했다. 분양가와 공급이 동시에 올라간 상황이 빚어졌다. 그런데 수요는 감소하는 추세다. 온라인쇼핑과 배달 문화 확산 등 소비 패턴의 구조적 변화로 오프라인 공간 필요성이 근본적으로 감소했다. 실물경기 위축으로 ‘자영업 폐업자 100만명 시대’에 들어서며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제도적 측면도 얽혀 있다. 상가 건물은 수익률(임대료)에 기반해 매매가가 결정되는데, 임대료를 인하하는 순간 자산가치가 급락한다. 예를 들어 수익환원율을 4%라고 했을 때, 월 임대료가 300만원(연수익 3600만원)이면 자산가치는 9억원이다. 하지만 이를 250만원(연수익 3000만원)으로 낮추면 자산가치가 7억5000만원으로 떨어진다. 당장 월세 250만원을 받는 것보다 공실로 두더라도 9억원 가치를 지키는 것이 추후 매각 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이 같은 임대료 경직성을 더 강화한다. 상가 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장기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계약갱신 요구권(최초 임차 기간 포함 10년)과 임대료 상한(5%)을 뒀다. 임대인으로선 한 번 임대료를 낮추면 향후 경기가 회복돼도 10년간 시세에 맞는 임대료를 받기 어렵다. 임대료를 낮출 수 없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노학민 알투코리아 투자분석본부 부장은 “현재 공실 위기는 복합적 난제”라며 “민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어 정책적 차원에서의 유연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