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외피’ 속 깊은 이야기… 하정우 “단 순 성적 코미디 아냐”

입력 2025-12-04 01:16
영화 ‘윗집 사람들’에서 연출과 주연을 맡은 감독 겸 배우 하정우. 네 편의 연출작을 선보인 그는 “영화 만드는 작업이 어렵다는 걸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게 됐다”며 “이전보다 더 신중해졌고, 여러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생겼다”고 말했다.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자신이 연출한 네 번째 영화 ‘윗집 사람들’(사진)을 선보이는 감독 겸 배우 하정우(47)는 비교적 담담했다. 여러 차례 블라인드 시사회를 거쳤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던 터라 “이미 관객을 만난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관객 반응이 좋아 천만다행이다. 오랜만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며 웃었다.

개봉 전날인 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하정우는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2013)을 제외하고 ‘허삼관’(2015) ‘로비’(2025) ‘윗집 사람들’까지 세 편 연속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다. 전작처럼 이번에도 ‘하정우 영화’의 색깔이 선명하게 묻어난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특유의 위트와 재치가 관객의 웃음을 끌어낸다.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을 원작으로 한 ‘윗집 사람들’은 소재부터 다소 파격적이다. 각방을 쓰고 대화는 모바일 메신저로 나눌 만큼 사이가 소원한 아랫집 부부 정아(공효진)·현수(김동욱)가 층간소음을 유발할 정도로 매일 밤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윗집 부부 김선생(하정우)·수경(이하늬)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내밀한 대화를 나누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정우 연출작 가운데 유일하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작품이다. 수위 높은 장면 하나 없이 오로지 대사만으로 ‘19금’ 판정을 받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네 인물이 부부 관계나 성적 취향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로 러닝타임 107분이 채워진다. 배우들의 대사 호흡에서 느껴지는 ‘말맛’에 하정우식 유머가 어우러지며 순간순간 웃음을 자아낸다.


하정우는 “영화를 보면 단순히 성적 코미디나 말장난으로만 이뤄진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며 “후반부 휘몰아치는 감정과 메시지가 중요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작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도 후반부 반전 때문이었다”며 “예상치 못한 전개 속에서 갈등이 해소되며 새 국면을 맞는 서사가 놀랍고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앞선 세 편의 연출작은 대중적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그는 “지나고 보니 욕심이 많았다.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캐릭터나 이야기가 모두 과했다”며 “이번에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오히려 내가 진짜 하려던 이야기가 더 잘 전달되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영화는 사람의 마음을 사고 공감을 얻어야 하는 작업이어서 매번 어렵다”고 했다.

연출작 장르가 코미디에 치중돼 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하정우는 “코미디 기반의 우디 앨런식 영화만 찍겠다는 생각은 없다”며 “코엔 형제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대부’(1973)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래 꿈이 감독이었고, 우연한 계기로 배우 일을 먼저 시작하게 됐다는 하정우는 “어릴 때부터 꿈꿔온 일을 이뤄가는 여정에 있다”고 했다. 지금은 내년 방영 예정인 tvN 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을 촬영 중이다. 그는 “이제는 현장에서 감독이 무얼 고민하고 힘들어하는지가 보인다. 한편으로는 ‘연기만 하니 이렇게 여유 있네’ 싶기도 하다. 마음이 아주 편하다”며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