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신체·인지 능력이 저하된 고령자 등 고위험 운전자가 일정 조건에서만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부 면허제’의 2027년 하반기 도입을 추진 중이다. 운전 조건 중 하나로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설치도 검토하고 있다. 잇단 고령층의 차량 돌진 사고에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2027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조건부 면허제 입법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건부 면허제 대상자의 기준을 논의하고, 운전 능력 평가 방법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제도는 고위험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 제한 등을 조건으로 운전면허를 내주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만 75세 이상은 면허 갱신을 위해 3년마다 인지 능력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경찰은 이 같은 기존 제도를 활용해 조건부 면허제 적용 대상으로 75세 이상 고위험 운전자를 우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상자들은 조건부 면허 발급 전 가상환경(VR) 운전 기기로 개개인의 운전 능력 진단·평가, 실차 주행 테스트 등의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고위험 운전자의 직계가족 등 제3자가 대신 조건부 면허 발급을 위한 검사를 신청할 수 있는 제도도 검토 중이다.
특히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설치가 조건부 면허제의 조건 중 하나로 포함될 수 있다. 앞서 경찰은 65세 이상 운전자 141명에게 해당 장치를 지급해 시범 운영한 결과,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가속이 차단되는 효과가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의 임의 설치가 허용되려면 자동차관리법 35조2항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 조항은 자동차의 안전한 운행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변경 및 설치를 금지한다. 자율주행차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 안전을 위해 지난 8월부터 시행됐다. 문제는 이 조항에 따라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임의 설치도 제한되고 있다는 점이다. 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경찰 시범운영 사업에서 장치의 안전성이 검증되면 설치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인데, 정확한 허용 시점은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를 신속하게 보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 ‘자동차 페달 오조작 사고와 대응 과제’에서 “고령자에 대한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비용 지원, 장착 시 보험료 할인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부천 제일시장에서 60대 트럭 운전자가 브레이크가 아닌 가속페달을 밟아 상가로 돌진해 4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지난달 24일에는 제주 우도 선착장에서 승합차가 보행자들에게 돌진해 3명이 숨지고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10월 21일 서울 용산구에서는 70대 택시 기사가 페달을 잘못 밟아 반대 방향에서 오던 승용차와 충돌해 택시에 탑승했던 20대 일본인 부부의 생후 9개월 딸이 숨졌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