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영 목사의 다함께 선교] 멀고도 가까운 선교지, 가정

입력 2025-12-04 03:05

수년 전 선교지에서 선교사 부부를 대상으로 한 가정사역 세미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한 부부가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많은 사역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선교사였지만 사역 이면에 깊은 부부 갈등과 자녀의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내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 차라리 선교지의 성도가 되고 싶었어요. 그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헌신적이면서 왜 나는 늘 외롭고 상처받아야 했죠.”

남편에게 가정 안에서도 선교사로 살아주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며 남편 선교사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주님의 눈에는 실패한 선교였음을 인정한 그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먼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이곳, 매일 밥을 먹고 대화하는 우리 가정이 곧 선교지일 수 있습니다.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있더라도 가정 안의 신앙생활은 교회 밖의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선 은혜로 충만하지만 가정에서는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도 자주 목격합니다.

특히 가족 중 나만 믿는 경우, 믿음의 외로움이 클 수 있습니다. ‘다른 집은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데 왜 나는 혼자인가’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의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가정선교의 시작입니다.

가족 중 누군가를 통해 신앙이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믿음이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가정 전체를 복음화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이 말씀은 믿는 자 한 사람에게 주어진 위대한 선교적 약속입니다. 가정 안의 선교는 때로 말보다 삶으로 눈물로 기다림으로 이뤄집니다. 전도지보다 한 끼 식사, 긴 설교보다 따뜻한 대화, 가정예배보다 함께 울어주는 기도가 더 강력한 선교일 수 있습니다. 배우자나 자녀가 거부하거나 무관심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시간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영혼을 향한 사랑과 신실함을 지켜가는 것, 그것이 선교입니다.

한 성도는 자신의 가정을 ‘미전도종족’이라 표현했습니다. 자녀와 대화가 통하지 않고 믿음의 언어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을 쓰지만 정서적으론 다른 문화권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품은 선교도 귀하지만 내 가정을 품는 선교야말로 가장 절박하고 가장 존귀한 사명입니다. 가정선교는 단기선교가 아니라 평생 여정이며 하루하루가 작은 성령 집회입니다.

사도행전의 교회들도 가정에서 시작됐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이었고 그 집에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한 곳도 가정이었습니다. 루디아, 고넬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복음의 공동체를 확장하셨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가정선교사로 부르십니다. 식탁 너머 배우자와 마주 앉을 때, 자녀의 방문을 여는 그 순간, 우리는 선교의 현장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심령이 선교지이고 예수님 계신 심령이 선교사입니다.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때로 작고 조용합니다. 거창한 찬양도 설교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작은 순종을 통해 가정 전체를 살리는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자녀와 손잡고 드리는 짧은 기도, 남편의 귀에 들리도록 낮게 부르는 찬송 한 구절, 화해의 손길…. 이런 작은 행위들이 가정선교의 씨앗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

가정을 세우는 것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의 순종과 기도가 쌓일 때 가정은 예배의 공동체로 선교의 기지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내가 선교사로 기억되는 가정, 자녀가 부모의 믿음을 보고 신앙을 이어받는 가정, 하나님은 그런 가정을 통해 이 시대의 구원을 이뤄 가십니다.

(새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