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위에 켜진 ‘희망의 빛’… 12월의 광장 밝혔다

입력 2025-12-06 03:01
지난달 30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지역 교회 1770개가 함께 세운 대형 성탄트리가 환하게 불을 밝히자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셋 둘 하나, 다 같이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시작 주일이었던 지난달 30일 광주 동구 금남로의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 광주광역시기독교교회협의회(회장 정석윤 목사) 소속 1770개 교회가 연합해 마련한 대형 성탄트리에 불이 들어오며 광장을 밝히자 환호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스하게 빛을 내는 트리 앞에 많은 시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그 순간을 기록하고, 두 손 모아 조용히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인 이 광장에 성탄트리가 세워지기 시작한 건 1985년. 1980년 광주의 아픈 역사 위에 희망의 빛을 전하려는 마음이 모였다. 정석윤 목사는 “참혹했던 5·18 민주화운동 이후 광주는 깊은 상처와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었다”면서 “광주 지역 목회자들이 그 절망의 현장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소망과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탄트리를 세우기 시작한 게 30년이 됐다”고 설명했다. 12월에 접어들며 전국 곳곳에 불 밝힌 성탄트리엔 이처럼 한해의 끝자락을 알리는 연말 풍경 이상의 뜻과 역사가 담겨 있다.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고 구원의 기쁨을 일깨우는 한국 성탄트리 문화의 기원, 상징적 장소와 의미를 함께 짚어본다.

‘크리스마스 트리’ 원산지가 한국?

초록빛 가는 침엽수로 꾸며지는 지금의 성탄트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기원은 명확하지 않다. 16세기 독일에서 신앙인들이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에 촛불을 밝혀 어둠 속에 오신 그리스도의 빛을 상징했다는 이야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숲을 산책하다가 별빛 아래 빛나는 상록수를 보고 감명받아 집으로 가져와 촛불로 장식한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등이 여러 기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재밌는 건 성탄트리로 가장 인기 있는 수종인 구상나무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구상나무의 학명 ‘아비에스 코레아나(Abies Koreana)’에 한국을 뜻하는 코레아나가 쓰인 건 구상나무가 한반도의 남부지방, 특히 제주 한라산에 자생하는 나무여서다. 구상나무라는 이름도 성게를 뜻하는 제주 방언 ‘쿠살’과 나무를 의미하는 ‘낭’을 합친 ‘쿠살낭(성게나무)’에서 온 것이다. 1920년 영국의 식물학자 헨리 윌슨이 한국 특산종인 이 나무를 발견해 학계에 발표하고 품종 개량해 상품화시킨 게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성탄트리 품종이 됐다.

정동에서 빛난 작은 불빛
초기 이화학당을 세운 선교사들이 성탄트리 앞에서 학생들에게 전할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화여대 페이스북

한국의 첫 성탄트리는 서양 여성 선교사들이 궁궐에서 명성황후에게 선보인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를 입증할 뚜렷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문헌으로 확인되는 한국 최초의 성탄트리는 정동 일대 선교사 거주지의 트리다. 1897년 호머 헐버트와 윌리엄 스크랜턴,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가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정동 일대에 트리를 세웠다. 이들은 당시 미국 본부에 보낸 편지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며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누었다”며 “조선 학생들이 처음 보는 트리에 매우 놀라워했다”고 적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배재학당 성탄트리는 전나무와 소나무 가지로 꾸며졌고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과일, 사탕 같은 작은 선물이 장식으로 걸렸다. 학생들은 수백개의 등을 만들어 학당 앞에 내걸고 가장 큰 십자가 등에는 ‘빛이 동쪽 나라에 비친다’는 뜻의 ‘광조동방(光照東方)’이라는 글귀를 새겼다.

1900~1920년대에는 평양 원산 대구 부산 등 주요 선교 지역을 중심으로 성탄트리 문화가 퍼졌다. 교회학교의 성탄 발표회와 트리 장식 전통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도심 상점가에 전등 장식이 등장하며 성탄절이 도시 풍경 속에 자리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강요와 종교 탄압으로 기독교 상징물인 성탄트리가 세워지지 못했지만, 1945년 해방 이후 미 군정과 함께 미국식 공공문화와 기독교 문화가 적극 도입되면서 성탄절 행사가 다시 확산됐다. 성탄절이 지금과 같은 연말 축제로 자리 잡게 된 건 이즈음부터로,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선 성탄절이 공식 공휴일로 지정됐다.

한국전쟁 이후 교회가 부흥하면서 본격적인 성탄 문화와 장식이 확산했다. 교회마다 성탄트리를 세우고 성가대 칸타타 전통이 자리 잡았다. 60~70년대에 서울과 부산 도심에 조명 트리가 등장하며 교회를 넘어 성탄 분위기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80년대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초대형 트리가 세워졌고, 90년대 대형 백화점의 성탄 장식이 연말 명물로 자리 잡았다.

서울광장에서 애기봉까지
2002년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세워진 성탄트리 꼭대기에 십자가가 올려진 모습. CTS기독교TV 제공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서울시청 앞 광장의 성탄트리와 점등식이 대표적인 겨울 명물이 됐다. 서울광장 트리는 60년 서울시 주관으로 꼭대기에 별 장식이 달린 트리를 설치한 게 시작이지만, 십자가를 올린 대형 성탄트리에 점등식을 하며 시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성탄의 의미를 알리는 지금의 모습은 2002년 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와 한국교회가 주도하면서 정착됐다.

올해도 서울광장에는 높이 20m, 폭 6m 규모의 대형 성탄트리가 세워졌다.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희망의 상징 ‘해당화’가 올해의 콘셉트다. 감경철 회장은 지난달 17일 점등식에서 “해당화는 겨울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으로 꽃말 또한 희망과 용기로 혼란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시민들과 한국교회에 꺾이지 않는 용기를 전하고자 사랑과 희망의 빛을 담은 디자인으로 구성했다”며 “성탄트리가 하나의 장식이 아니라 생명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사랑이 이 땅에 다시금 회복의 빛으로 비추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하루 4만명이 오가는 광주송정역은 최근 ‘12월 가장 예쁜 역’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지역교회와 지자체, 지역 소상공인 등이 함께 손길을 보태 성탄트리와 다양한 LED 조명 조형물을 꾸민 것.

성탄트리와 LED 조형물로 꾸며진 광주 광산구 광주송정역 앞 풍경.

시민들이 함께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하자는 광주 광산구기독교교단협의회(회장 진태동 목사) 취지에 공감한 광산구청과 지역 소상공인회가 지난 3월부터 함께 협의하며 준비해온 결과다. 진태동 목사는 “성탄절에 시민들이 기쁨을 나누고 주변 소상공인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오는 20일에는 퍼레이드와 다양한 문화행사도 연다. 예수님의 사랑이 시민들에게도 따뜻하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과 맞닿은 경기 김포 애기봉의 성탄트리는 오랫동안 한반도를 밝히는 신앙의 상징이었다. 북한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이 트리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전쟁이 아닌 빛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왔다.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위협할 때는 설치가 중단되고, 남북관계가 안정되면 다시 세워지는 등 말 그대로 남북관계의 ‘온도계’로 불리는 특별한 트리다. 애기봉 성탄트리는 2014년 기존 등탑 노후화로 철거됐다가 10년 만인 2023년 12월 24일, 다시 불을 밝혔다. 철탑 대신 애기봉 전망대로 이어지는 약 800m 생태탐방로에 트리 형태의 조명을 설치해 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리처럼 빛나도록 연출하며 많은 시민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오는 20일 점등식이 진행된다. 애기봉 생태공원 관계자는 “외국인 포함 연간 40만명이 분단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이곳을 찾는데, 다들 처음엔 긴장감을 안고 올라왔다가 멀리 북한 지역과 한강하구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자연스레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게 된다”며 “이번 성탄트리 점등식에도 남북의 평화를 위해 많은 분이 찾아와 마음을 모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