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논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육군훈련소다. 이 때문에 국방산업 도시라는 약간 강한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논산에는 감성적이고 동화 같은 풍경도 적지 않다.
먼저 벌곡면 외딴 길에 자리한 ‘온빛수목원’(온빛자연휴양림)이다. ‘탄소상쇄숲’이란 타이틀이 붙은 개인 소유의 사설 휴양림으로,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색채가 인상적이다. 특히 늦가을에 하늘 높이 뻗은 메타세쿼이아 숲이 단연 압도적이다. 여름엔 싱그러운 녹음이 우거지고, 늦가을이면 나무들이 주황빛으로 물든다. 고요한 산책길과 잔잔한 호수가 어우러져 감성을 자극한다. 최우식·김다미 주연의 TV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숲의 중심부에는 이국적인 노란색 2층 별장 건물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 분위기 덕분에 ‘그 해 우리는’에서 남녀 주인공이 여행 중 머물던 조용한 호숫가의 집으로 등장했다. ‘논산 속 스위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림 같은 풍경은 그대로 호수에 데칼코마니처럼 비친다.
화려한 시설이나 인위적인 조경 없이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더 매력적이다. 곳곳에 놓인 작은 조각상과 전망대, 쉼터들이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고요한 산책길을 걸으면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함께 자연이 들려주는 작은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휴양림 규모가 크지 않아 한 바퀴 돌아보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온빛수목원에서 6㎞ 떨어진 양촌면 산직리에는 ‘김종범사진문화관’이 있다.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사진 갤러리 겸 카페다. 2019년 10월 김종범 사진작가의 대표작들로 개관 기념 전시회를 연 뒤 세계 곳곳에서 찍은 신비로운 풍경과 논산의 자연경관 등 테마별 사진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촬영한 고래 사진은 사진 애호가와 고래 마니아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문화관 뒤쪽의 울창한 대나무숲은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 명소다. 숲속에는 김종범 작가가 직접 만든 ‘세상에서 가장 작은’ 1인 교회가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동화에서나 만날 법한 작은 교회다. 빨간 문을 단 흰색 교회는 대나무 숲 사이로 쏟아지는 광선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이 들어가 기도하기 딱 좋다. 내부 작은 탁자 위에는 성경이 펼쳐져 있고 그 앞엔 작은 의자가 놓여 있다.
온빛수목원에서 반대 방향으로 황룡재를 넘으면 연산면이 나온다. 이곳에 연산역이 있다. 역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다. 높이 16.2m의 원기둥 모양 급수탑에는 30t의 물을 채울 수 있었다. 1911년 12월 설치된 뒤 1970년대까지 60여 년 사용되다가 디젤기관차의 등장으로 소임을 다했다. 급수탑은 보존 상태가 좋아 대한민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연산역 바로 앞에 2022년 문을 연 연산문화창고가 있다. 옛 미곡 창고였던 낡은 농협 창고 5개 동을 담쟁이예술학교, 커뮤니티홀, 카페, 다목적 홀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오는 3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연산문화창고 4동 다목적홀에서 ‘2025 연산문화창고 크리스마스 특별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버려진 곡물창고가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과정을 곡식의 ‘순환’에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다섯 개의 테마 공간을 통해 그 의미를 새롭게 조명한다.
연산문화창고에서 차로 5~10분 거리에 돈암서원이 있다. 조선시대 예학의 대가인 사계(沙溪) 김장생(1548~1631년)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634년 건립된 서원이다. 호서 서인계 학맥의 거점으로, 당대 정계와 학계에서 큰 활약을 한 송준길·송시열·이유태·윤원거·윤문거·윤선거 등이 강학하고 모임을 하던 곳이다.
일찍이 과거 시험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정진했던 김장생은 학행으로 천거돼 1578년 창릉참봉이 됐고 이후 여러 벼슬을 거친 뒤 연산으로 낙향하기를 거듭했다. 1613년 계축옥사 때 연루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난 뒤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해 은거하다 84세로 생을 마쳤다.
서원은 현 위치에서 1.7㎞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하천에 가까운 저지대여서 수해 우려로 1880년 지금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등재됐다.
입구에 산앙루(山仰樓)라는 누각이 있다. 담장 밖에 따로 있는 이 누각 뒤로 담장을 끼고 있는 입덕문을 지나면 전면에 강학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양성당(養性堂)과 그 앞 좌우의 동·서재다.
창건 당시 강당이었던 응도당(凝道堂)은 규모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어 1880년 이건할 때 함께 옮기지 못하고 1971년에야 옮겨졌다. 그래서 응도당이 들어설 자리에 양성당이 자리하게 됐고, 응도당은 양성당의 동남쪽에 별도로 배치됐다. 양성당과 정회당 사이 장판각에는 김장생의 예학 관련 저술인 ‘상례비요’ ‘가례집람’ 등 서적들이 목판본과 함께 보관돼 있다.
여행메모
벌곡면 온빛수목원 주차·입장 무료
양촌곶감축제 12~14일 체육공원에서
벌곡면 온빛수목원 주차·입장 무료
양촌곶감축제 12~14일 체육공원에서
온빛수목원은 ‘벌곡면 황룡재로 480-113’에 자리 잡고 있다. 호남고속도로 계룡나들목이 편하다. 수목원 입구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넓은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입장료는 물론 주차료도 받지 않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반려동물 출입도 허용된다. 500m쯤 걸으면 메타세쿼이아 숲속 노란 별장 건물을 만난다. 이곳은 사유지이기에 내부 출입은 불가능하다.
온빛수목원 인근 벌곡면 사정리에 있는 ‘카페벌곡’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호수와 주변 산 등 빼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투명 카약 체험도 가능하다.
김종범사진문화관은 호남고속도로 양촌나들목에서 가까운 ‘양촌면 대둔로351번길 48’에 있다. 겨울철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여름철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관한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문화관 내 ‘카페더모어’가 운영 중이다. 5000원 상당의 차 한 잔으로 관람료를 대체한다.
연산문화창고는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되며 관람료는 무료다.
양촌곶감축제가 오는 12일부터 3일간 양촌체육공원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 축제는 양촌의 곶감과 크리스마스를 콘셉트 및 스토리로 활용해 농특산물 홍보 판매, 공연, 체험, 이벤트 등으로 프로그램 및 공간을 구성했다.
논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