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석기 (22) 마약중독으로 고통받는 한인 자녀들, 주님의 손길 닿길

입력 2025-12-04 03:06
2015년 김석기 목사에게 복음을 듣고 훈련받은 재소자가 멕시코 티후아나에 세운 교회에서 입당 예배를 마친 주민들이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법원을 찾는 일이 많았다. 오렌지카운티 교도소 관할 지역엔 5개 법원이 있었는데 그 중엔 청소년 법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법원을 다니는 첫 번째 이유는 재판을 받으러 오는 재소자들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특히 낯선 미국 땅에서 언어도 통하지 않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목사가 자신을 위해 법원에 앉아 기도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노로 닫힌 마음, 독기로 가득한 마음, 돌처럼 굳은 마음이 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오렌지카운티에는 정신 질환으로 분류된 재소자들을 재판하는 법원이 따로 있었다. 안타깝게도 한인 자녀들 가운데 마약 중독으로 정신적 문제까지 겪는 이들이 많았다. 기소된 피의자들에 대해 법원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면 ‘멘털 코트(Mental Health Court, 정신건강 법원)’로 보내 치료와 재판을 병행했다. 나는 한인 젊은이들의 마약 사건 재판을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들을 신앙적 케어 기관으로 보낼 수 있도록 변호사와 상의하고, 때로는 검사에게 부탁하고, 판사에게 프로그램 배정을 청원하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판사들은 사역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몇 해 전, 그 법원에서 일본인 남편이 아내를 위해 변론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아내는 이미 판결을 받은 상태였는데 남편이 두꺼운 파일철을 들고 판사 앞에 섰다. 내 눈에는 아내가 중증의 정신 질환을 앓는 듯 보였다. 여자 판사가 이어가는 질문에 남편은 젠틀하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숙제 검사처럼 보였다. 이전 기일에 판사가 과제를 내준 모양이었다. 남편은 대학교수였고, 여러 차례 아내를 대동해 온 듯했다. 판사는 아내의 상태를 세심히 묻고 확인했다.

뒤에서 지켜보는 내게 남편의 표정과 태도는 ‘사랑’ 그 자체였다. 아내가 병증으로 인해 산만해지면 남편은 다정히 어루만지고 얼굴을 맞대며 집중을 도왔다. 그것은 가식도, 판사에게 잘 보이려는 제스처도 아니었다.

남편은 아내가 그린 그림들을 펼쳐 보이며 “이건 이렇게 그렸고, 요즘 이렇게 좋아졌습니다”라고 자랑했다. 그의 눈빛은 인자했고, 처방 약의 종류와 복용 반응까지 세세히 설명하며 약에 따라 아내가 찡그리는 표정까지 흉내 냈다. 어떻게 이렇게 성실하고 진실하게 한 사람을 돌볼 수 있을까 싶었다.

나를 가장 감동시킨 건 문제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이었다. 40여분 동안 이어진 공판에서 판사도 그 남편의 사랑스러운 태도에 미소를 지었고,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재판이 끝난 뒤 남편이 아내의 겉옷을 입혀 주고 나가길래 나도 복도로 따라 나가 정중히 인사했다. “저는 한국 목사입니다. 오늘 아내를 돌보시는 태도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이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니까요”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기도하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날 온종일 그 남편이 생각났다. 문제를 문제로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 진실함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