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한층 공고해졌지만… ‘협치 부재’ 근본 문제는 여전

입력 2025-12-03 02:14
집회 참가자들이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석방된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윤석열 파면’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날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한형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약 2시간30분 만에 비상계엄을 해제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두고 전 세계에서 ‘K민주주의’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계엄 선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 유혈사태 없는 평화적 저항은 한국 민주주의가 한층 공고해졌다는 근거로 제시됐다. 그러나 비상계엄을 계기로 심화된 진영 갈등의 고착화와 국회 협치의 부재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K민주주의 회복력, 빛과 그림자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일 “계엄을 통해 민주주의가 비가역적으로 정착이 됐고, 정치적 문제는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확인됐다”며 “특히 정권교체 등을 보면서 계엄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계엄 이후 절차적 정당성에 따라 헌정질서가 신속하게 회복됐다는 인식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효능감도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9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발표한 2025년 민주화운동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56.6점으로 전년(53점)보다 3.6점 상승했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 수준에 대한 평가도 57.6점으로 4점 올랐다. 조사는 지난 6월 만 18세 이상 국민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사업회는 “올해 조사에서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가 상승한 것은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민주적인 반전을 이뤄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라고 해석했다.

다만 계엄을 계기로 사회 갈등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월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집단별 갈등인식 조사에서 여야 갈등 및 진보·보수 갈등이 ‘크다(아주 크다+큰 편이다)’는 답변은 각각 94%와 92%로 나타났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지지율이 40% 안팎까지 치솟는 등 전체적인 흐름이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켰고 새 정부도 들어서서 다행이지만 오히려 문제는 그 이후”라며 “적대적 양당 정치, 소수의 목소리가 과다대표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월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 당시 주문했던 타협과 협치의 정치문화 회복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헌재는 당시 탄핵 선고요지에서 비상계엄의 중대한 헌법 위반사항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대통령과 국회 간 갈등 해소 필요성을 강조했다. 헌재는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 그리고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며 “윤 전 대통령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권교체만 이뤄졌지 협치 부재라는 본질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윤 전 대통령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계엄을 한 건 말이 안 됐다”면서도 “(정권교체 이후) 여전히 국정운영에서 함께하려는 그런 모습은 없고 행정부와 입법부가 독주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협치 개혁·시민 의견 반영 루트 필요

전문가들은 계엄 이후 공직사회에 대한 명확한 신상필벌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3 비상계엄 과정에서 장관이나 군·경 관계자 중 사퇴하거나 적극 반대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불법 계엄에 편승하려 했다”며 “신상필벌 중 특히 ‘신상’을 더 중시해 윤석열정부 동안 잘못된 일을 막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적 차원에서 선거제도 개혁과 같이 협치를 가능케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성 지지층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거대 양당체제하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거대 양당이 강성 지지자에 의존한 쉬운 정치를 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며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가 도입되면 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기 힘들고 정치권에서 협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에서 확산된 ‘독일이 말한다’ 모델이다. 이는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시민을 1대 1로 매칭해 직접 대화하게 함으로써 상반된 의견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2017년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가 시작해 현재 9만명 이상 참여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시민들 간 풀뿌리가 형성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태극기·촛불 등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한 시민들이 차분한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현 차민주 기자 2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