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주요국도 각 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에 맞는 정년연장 논의가 한창이다. 독일에서는 민간 근로자의 법적 정년이 없고 공적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사실상 정년으로 기능한다. 현재 독일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5세이며 2029년까지 67세로 늦춰질 예정이다. 프랑스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70세 미만의 근로자를 퇴직시킬 수 없게 하고, 퇴직연금 수급 연령을 2030년까지 64세로 조정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에 가장 큰 시사점을 주는 곳은 일본이다. 주요 선진국 중 노동관계 법령에 민간부문 종사자에 대한 별도의 정년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장기간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의 정년연장을 시행했고,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정년연장 방식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012년부터 65세까지 고용 의무화
5일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일본은 1994년 한국과 동일하게 60세 정년제를 실시했다. 그러다 한국이 현재 직면한 2차 베이비부머 세대와 같은 ‘단카이 세대’의 대규모 퇴직을 맞았다. 단카이 세대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출생률이 급증한 1947~1949년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일본 인구의 약 5%(약 800만명)를 차지한다. 단카이 세대의 대규모 은퇴가 시작되는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력 감소와 연금 재정 악화 등의 우려가 커졌고, 후생연금 지급개시 연령도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상향돼 2025년 65세가 되는 만큼 이에 정년을 맞춰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정년을 60세로 한 지 15년 만인 2012년, 일본은 사업주가 희망하는 근로자 전원을 65세까지 의무적으로 고용토록 하는 ‘65세까지 고용 의무화’를 법에 규정했다. 법 개정을 계기로 일본 기업들은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희망자에 한해 65세까지 고용할 의무를 갖게 됐다. 고용 의무화 조치를 위반한 기업에 대해선 지도, 권고가 들어갔고 위반 사항도 공표했다.
다만 기업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조치도 병행했다. 정년연장, 계속고용 제도 도입, 정년 폐지 등 3가지 선택지에서 고용 의무를 하도록 했다. 또 근무 태도가 현저히 불량하거나 정상 직무 수행이 어려운 근로자는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 기업들이 가장 선호한 선택지는 계속고용 제도였다. 우선 근로자를 은퇴시키고 매년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는 형태인데 재고용 시 임금을 30~50% 수준으로 삭감해 기업으로선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일본은 또 한 번 전환기를 맞게 됐다. 2020년 일본은 65세 이상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할 것을 사업주의 노력 의무로 하는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를 법에 명시했다. 기존에 시행하던 65세까지 고용 의무화 조치 외에 다른 기업 재취업 지원, 창업 지원, 프리랜서 계약 같은 선택지를 추가함으로써 사용자의 직접 고용 부담을 덜었다.
사용자가 어떤 방식으로 취업기회 확보를 위해 노력할지는 희망 근로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노사 간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사용자는 다른 기업 재취업 지원, 창업 지원, 프리랜서 계약 중 하나를 택하는 게 아니라 복수로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고령자 취업 증가 상당한 효과
일본의 이런 정책은 고령자 취업에 상당한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노동정책 연구·연수기구(JILPT)는 지난달 12일 노사발전재단 심포지엄 연구 보고에서 총무성 자료를 인용해 일본의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2013년 1234만명에서 2023년 1468만명으로 18.9% 증가했다고 밝혔다. 65세 이상 신규 구직자도 2023년 6만명을 넘겨 2014년보다 1.6배 늘었다.
일본에서는 단순히 고령자의 취업자 수만 늘리는 게 아니라 고령자의 능력 개발을 위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의 인재 개발 등을 지원하는 조성금 제도, 근로자 개인의 능력 개발 활동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교육훈련급부 제도, 그리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은 민간 조직이 노동자에게 직접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적 직업훈련 제도 등이 있다. 후지모토 마코토 JILPT 부총괄연구원은 “이들 능력 개발 지원의 기본적인 정책은 일부를 제외하고 근로자 연령을 제도의 대상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일본의 정년연장 정책이 마냥 긍정적인 효과를 낸 건 아니다. 65세까지 고용 의무화 조치를 통해 표면적으로 고령자의 취업자 수를 늘리긴 했지만 임금을 삭감한 계약직 재고용 형태가 주를 이뤄 고령자의 근로조건 악화 문제를 일으켰다. 70세까지 취업기회 확보 노력 의무화도 고령자를 충분한 준비 없이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로 나가게 함으로써 고령자의 안정적인 생활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근로조건 악화에 적절한 임금
이런 우려를 고려해 후생노동성은 2012년 임금·인사처우 제도 재검토에 관한 지침을 내렸다. 후생노동성은 임금·인사처우 제도가 고령자의 고용 및 생활 안정을 배려한 계획적이고 단계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했다.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고령자의 취업 실태, 생활 안정 등을 고려해 적절한 임금이 되도록 노력할 것을 명시했다.
안준기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도 고령자의 학력 및 전문성이 다양화되고 있어 특성에 맞는 교육훈련을 통해 계속 고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선 황민혁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