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삶으로 증명한 진리… “전도는 열매 아닌 씨 뿌리는 일”

입력 2025-12-04 03:05
이종근 장로가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평소 전도할 때 사용하는 전도지와 전도용품을 들고 미소 짓고 있다.

대구 중구 대신동. 1944년 이곳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이종근(80) 천금선교회 장로의 삶은 30대 무렵 극적으로 뒤집혔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금은방을 물려받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던 중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라는 질문 하나에 붙들려 전혀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선 것이다. 믿음을 회복하자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다”는 열정이 폭발했고, 교회와 이웃을 향해 아낌없이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도의 삶과 실패, 좌절과 회복의 과정을 담은 간증집 ‘3만명 전도의 비밀’을 출간했던 이 장로는 그 공로로 국민일보 ‘2025 기독교브랜드 대상’ 문화부문을 수상했다. 수십 년간 노방과 축호 현장을 누빈 그는 지금도 거의 매일 전도 현장에 선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 장로는 “전도는 나를 변화시키는 길이자 삶을 다시 세우는 힘이었다”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전도의 불씨를 붙들고 살고 싶다”고 말했다.

변화를 경험하기 전인 20대 청년 시절, 그는 모태신앙인이었지만 스스로 ‘나일론 신자’라고 냉소하던 사람이었다. 30세가 될 때까지 그는 “십일조와 헌금은 다 거짓이고 하나님도 없다”라며 교회를 떠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은 하나님께 진짜로 기도해보자.’ 응답이 없으면 완전히 떠나겠다는 결심으로 성경을 펼쳤는데 사흘 만에 예상치 못한 체험을 했다. “말씀을 읽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 강하게 와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순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혔어요.”

이후 목회의 길을 꿈꿨지만 신학교 진학은 계속 막혔다. 그때 기도 중 들려온 한 문장이 그의 방향을 바꿨다. “‘너는 나누어 먹이기만 해라’는 마음을 받은 거예요. 오병이어처럼 내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맡기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전도사역을 위한 천금선교회를 세운 계기다. ‘천금(天金)’은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마 6:19~20)는 말씀에서 따왔다. 물려받은 아버지 금은방을 바탕으로 농어촌 미자립교회 34곳을 매달 후원하고, 1980년대 초부터 전도지를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다. “지금도 1년에 30만 장 정도 제작합니다. 교회 연락처를 적을 수 있게 빈칸을 만들고, 전도하는 교회라면 누구든 가져다 쓰라고 했죠.”

그러나 ‘퍼주기 신앙’은 가정경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사역의 필요는 점점 커지고 재정은 바닥났다. 1984년 시작한 건축사업이 2년 만에 무너지며 전 재산을 잃고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다섯 명의 가족은 부엌과 화장실도 없는 6.6㎡(2평) 남짓 단칸방에 살아야 했다. 남은 것은 3억원의 빚뿐이었다. 스트레스와 영양부족으로 온몸에 경련이 오고 밤새 잠을 못 자면서도 병원비가 없어 치료도 받지 못해 80㎏였던 체중이 50㎏가 될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대로 가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던 1986년, 어린 시절부터 다녔던 대구서문교회가 성도 1인당 30명 전도를 목표로 전도 집회를 준비했다. 그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열매 하나는 맺어야겠다”며 다시 전도를 결단했다.

한 달 동안 2000명 전도를 목표로 밤낮없이 길가에 섰다. 이 장로는 “당시 건강이 악화해 뼈만 남고, 살이 빠져 옷도 커진 볼품없는 행색으로 전도하는 나를 향해 ‘너나 복 받아라’라며 비웃는 이들도 많았다”며 “그럼에도 복음의 씨를 뿌리는 건 내 몫이라 믿고 계속했다”고 했다. 전도 집회 당일 그를 통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 이는 1026명에 달했다. 당시 그의 전도지를 받고 결신했던 고등학생이 훗날 대구 한 대형교회 부목사 사모가 돼 다시 만나게 된 사연부터 지금은 교회 권사가 된 며느리 이야기까지 간증도 다양하다.

집회 후 그의 삶은 기적처럼 반전됐다. “어느 날 아침 통증이 싹 사라지고 몸이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집도 주시고, 사업도 회복되고, 자녀들도 대학까지 잘 보냈어요. 전도에 나섰더니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금은방 천금보석을 되살려 운영하고 있다.

그의 책엔 이러한 삶의 경험이 오롯이 담겼다. 그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전도는 열매가 아니라 씨 뿌리는 일입니다.” 이 장로는 마가복음의 씨 뿌리는 비유를 들며 말했다. “우리는 흔히 30·60·100배 열매만 생각하니까 주저하는데, 우리의 일은 ‘뿌리는 것’”이라며 “뿌리면 하나님이 거두신다”고 강조했다.

그가 실천해 온 전도 전략은 전도지와 함께 전도용품을 나누는 것이다. 렌틸콩이나 기장 같은 건강식품을 작은 봉투에 담아 아파트와 상가를 돌며 전하고, 며칠 뒤 다시 찾아가 “잘 드셨나요” 묻는다. 그는 “노방전도나 축호전도 모두 결국은 관계전도로 이어져야 한다”며 “아파트 주민, 직장 동료, 단골 가게 등 내 주변에서 신뢰를 쌓는 것이 전도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내외 5000여개 교회에서 전도집회 강사로 섰다. 그는 “집회에 가면 항상 하는 말이 ‘당신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 때 전도해 봐라. 야구로 치면 9회 말 투아웃에서 홈런을 치는 게 전도’라는 것”이라며 “전도의 동기를 부여하는 자로 지금도 쓰임 받는 것이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많은 교회가 성도 감소와 재정난으로 힘들어합니다. 저는 교회마다 다시 전도의 불길이 일어나 부흥이 회복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이 건강 주시는 날까지 전도의 동기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