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책임 회피하는 김범석 의장… 징벌적 과징금 반드시 부과를

입력 2025-12-03 01:20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3370만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쿠팡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뉴욕 증시에 상장한 미국 법인이다.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도 미국 국적의 ‘검은 머리 외국인’이며, 의결권의 70% 이상을 그가 가졌다. 그러니 법인도 주인도 ‘미국인’인 회사인데, 40조원이 넘는 매출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올리고 있다. 한국 소비자를 상대로 돈을 벌고 한국 전자상거래 1위의 지배력을 누리면서, 의사결정은 미국에서 미국인이 좌우하는 기묘한 경영 구조가 이번 사태의 기저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 성인 대다수의 민감한 정보가 유출됐고 어처구니없는 관리 부실 탓임이 드러났지만, 김 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객에 대한 사과도, 피해에 대한 보상도, 재발방지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총수가 직접 수습에 나서던 다른 대기업과 전혀 다른 행태에 2일 소비자 단체들이 그를 직접 겨냥해 ‘사과’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미국 이사회에 앉아 의결권을 걸머쥐고 수익을 챙기면서, 한국의 월급 사장을 총알받이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경영 방식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도외시한 것이었다. 이는 쿠팡이 과로사 문제, 과도한 입점 수수료 문제 등 숱한 논란을 일으키다 급기야 “기본도 지키지 않아” 보안 참사를 낳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김 의장은 2021년 쿠팡 물류센터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한 날 한국 법인 등기이사직을 사임해 법적 책임 선상에서 빠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총수) 지정’을 미국 국적 등의 이유로 피해 대기업 총수에게 주어지는 각종 의무에서도 벗어나 있다. 지난해 주식을 처분해 5000억원을 현금화하며 상당액을 기부한 곳은 미국 자선단체였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여러 상임위가 그를 찾았지만, 해외 체류 등을 이유로 모두 불참했다. 사회적 책임은 미국에서 하고, 한국에선 국회가 불러도 가지 않는 기업인이 늦게라도 이 사태의 책임을 자청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듯하다.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개인정보보호법상 최대치인 ‘1조원대 과징금’을 주문했다. 징벌적 과징금과 손해배상이 이번엔 반드시 작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