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큰 얘기를 하고 싶다. 최근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을 바라보고, 이에 대해 미국이 취하는 입장을 마주하노라면 남의 일 같지 않은 착잡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미·일동맹은 전 세계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가장 강력한 동맹이었다. 2차대전 후 전통적인 동맹 관계일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급팽창하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더욱 견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이 동맹 관계의 절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발언 후 급랭한 중·일 관계에서 미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는 일본을 심히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트럼프가 동맹인 일본의 손을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대만 문제에 대해 더욱 신중하라”고 점잖은 훈수를 두며 중국을 두둔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을 적으로 대하기보다 G2 간의 공존과 번영의 틀에서 접근하려는 트럼프의 큰 그림에 일본이 덧칠을 하게 될까 우려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는 국제질서가 얼마나 냉엄하고 자국중심주의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요동하는 변동성을 갖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때 전 세계에서 소련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를 자랑했던 우크라이나가 작금에 자국의 국방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해 전쟁의 종결 여부까지도 미국과 유럽에 내맡겨야 하는 현실을 보면 너무나 뚜렷해진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미국이라는 우방에 한없이 기대기만 했던 한국에는 가히 경종이 될 만하다. 동맹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맹이 모든 상황에서 항상 같은 온도로 우리에게 반응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가 깊게 맞닿아 있지만 국제정치의 우선 순위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미·중 경쟁 구도가 격화되고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예전 같지 않게 되면 한국 문제가 그들의 세계화 전략 안에서 항상 최상위에 위치한다는 보장도 없고, 또 그렇게 해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세계는 트럼프의 무역 전쟁 점화 이후 이미 급변하고 있으며 국가 간 이해관계는 기존의 모든 틀을 유동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길은 보다 명확하지 않을까. 한·미동맹은 더욱 견고히 유지하되 자주적 역량은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국가가 아닌 자율성과 책임을 갖춘 동반자만이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존중을 받는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다. 누가 내 집에 들어오는 도둑을 막기 위해 내 옆집의 힘센 사람 도움에 의존한다는 말인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향해 반복해 외쳤던 경고는 우리나라가 가야 하는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사야는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31:1)라며 외세 의존의 유혹을 질타했다. 이는 단순히 신앙적 잣대가 아니라 그 시대의 국제정치 현실을 꿰뚫어 본 통찰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국제정세 활용에도 적용된다. 이런 면에서 미국과 전시작전권 이양에 관한 얘기가 오가고 핵잠수함과 자주국방을 위한 국방비 증액 등의 얘기가 오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결국 국가 안보는 감정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의 문제요, 이 냉혹한 현실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자기 나라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 식으로 말하면 “자기 나라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 원리를 기억하고 다가오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유연하고 지혜롭게 대비하면 좋겠다.
(새문안교회)